삶은 선물이다.

by 발돋움

보상을 받기에 충분한 어떤 행위를 하지 않고도 눈뜨면 나에겐 선물이 도착해 있다.

어제 바른 매니큐어 손톱 끝날의 미묘하게 벗겨진 부분을 구분할 수 있는 시력, 눈을 뜨기 전 이미 느껴지는 포근한 침대와 베개의 촉감,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아침의 우렁찬 알람소리.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건너편 건물 네온사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들이 모두 나에게 거저 주어진다.

나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안락한 집에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준비해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들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며, 월급통장에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따박따박 월급을 보내주는 회사에 출근한다.


혹자는 삶은 전쟁이라고도 했다.

쏘지 않고 머뭇거리면 어김없이 내가 총에 맞고 마는 냉혹한 전시상황. 그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그러한 삶도 겪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총성과 포탄소리 같은 부모님의 싸움은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났고, 원만한 대인관계도 어려워 대학까지 15년 동안 거의 외톨이로도 지내봤다. 기간제, 특수업무직으로 시키는 별의 별일을 겪으며 설움도 많았다.


그러나. 살다 보면 또 살아진다. 살아내다 보면 웃을 날도 생긴다.


[바람이 불어온다!... 살아봐야겠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해변의 묘지- 폴 발레리


나에게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내 삶에 담금질로 버텨내다 보면, 그 시련이 나에게 주는 의미도 분명히 있을 텐데. 혹은, 나의 역치를 넘는 강력한 태풍이 불어온다면, 잠시 쉬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한 방법일 텐데.


어제 지인에게 같은 아파트 16층에서 여고생이 투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가슴은 이네. '쿵'하고 내려앉는다.

아직, 어둠 끝의 빛을, 가뭄 끝에 단비를 맞보지 못하고 세상 속 괴로움과 고통의 기억만을 안고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한 가녀린 아이가 너무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곳에선.. 혼자 슬프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림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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