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둬요.

힘든 시간이 지난 후에 공감.

by 발돋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당시 담당 과장이 면접에 합격하고 출근한 첫날 내게 한 말이다.

지금 그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런 시답잖은 말을 경청하며 외마디 대답도 없이 얼어 있었는지 울화가 치밀지만, 병원만 다니다 처음 기업체에 출근한 나는 그들만의 생리부터 일. 회사생활의 1에서부터 10까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대거리를 못할 수밖에...

나에게 회사란 출근하자마자 퇴사를 권유하는 살벌한 곳이었다.


당시 나의 담당 과장은 지나친 외골수였다. (지금은 다른 팀에서 근무하긴 하지만 성향은 변함이 없다.)

말소리가 흐려 괭장히 주의를 집중해야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었고, 글씨는 또 어떻고.. 암호해독보다 더 힘들어 서류에 휘갈겨 놓은 글씨를 '이게 무슨 글자인가요?'를 묻지 않고는 해석이 어려울 정도였다. 거기다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음주상태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들으면 소주잔을 던지고, 직원들과도 언쟁을 일삼았다. 한마디로 개차반 상사였다.


거기다 팀장은 또 어떻고...

속이 더부룩해 소화제 한 알을 먹고 일일보고를 올리면 바로 콜이 왔다.

"OOO이 누구야?"

"접니다."

"간호사가 소화제를 왜 먹어?"

하나같이 말문을 막는 질문들 투성이었다. 이 회사 사람들은...

지금 같았음 '간호사도 아픕니다~!'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겠지만, 회사 첫출근 부터 틀어막힌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의 창구 때문인지, 나는 입을 막고, 귀를 닫아야 직장생활이 가능하다고 느꼈다.

무슨 조선시대 궁중생활도 아니고...


그렇게 이 회사를 2005년에 입사해 2023년까지. 18년을 다녔다.

버텼다가 맞는 표현인가?


그렇게 지나고 나서 뒤돌아 보니... 그런 사람도. 이런 사람도. 다 그냥 사람이었다.


나에게 퇴사를 권유한 과장은 자신의 성격이 극히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친화력도 떨어지니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적응하는 상황 자체가 공포였을지 모른다.

나에게 소화제 한알도 용납할 수 없었던 팀장은 자신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아 소원했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칩거 생활을 하며 '내가 왜 그랬나' 후회의 눈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삶은 거져 무언가를 주는 법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렇게 하면 왜 안되는지 지독한 고통을 준 후에야 무언가를 넌지시 건넨다.


나도. 내가 겪어온 많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에 대해 공감의 영역을 넓혀 간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도 편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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