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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10. 2023

남편. 내편.

어렸을 때, 그러니까 결혼 정년기 전에.

누군가가 결혼 비슷한 얘기만 해도 나는 단호했다.

"나! 결혼 안 해!"

집안을 늘 공포와 불안에 떨게 만든 아빠를 보며, 모든 결혼생활이 이러하고, 모든 배우자가 저렀다면, 결혼은 미친짓이라고 생각했다. .

내게 남자는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신랑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연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신랑은 중학교 동기였다. 그때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머리는 스포츠로 짧게 밀고, 작은 키에, 배는 볼록 나왔으며, 성격도 까칠한 그냥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보고 만난 중학교 동기 모임에서 나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됐다.

"제 누구야? 친구 따라 여기 온 거야?"

동기 옆에 말없이 앉아 있는 남자 사람. 처음 본 얼굴이었는데 묘하게 익숙했다.

신랑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before와 after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180cm 가까이 되는 키에 슬림한 몸매, 샤프한 얼굴까지. 이미 신랑은 중학교 때 그 동기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사람 만 보였다. 중학교 모임은 빠지지 않고 나갔고, 믿음직스러운 말투와 진중한 태도에 나는 '이 남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4년 연애하고 결혼해 벌써 결혼 16년 차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좋냐? '라고 결혼 한 사람들은 한 번 이상은 들어 본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직도 좋다.' 다.


[애 낳고 나면 당연히 각방을 쓴다. 말이 안 통해서 말만 하면 싸운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말을 안 한다. 집안일은 도통 안 한다. 자기는 나가면서 내가 나가면 엄청 눈치를 준다.]

주위 결혼 한 부부들은 참 많은 이유들로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나의 남편은 아이들을 괭장히 잘 케어해 주고, 요리며, 청소며, 집안일은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인 사람이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유치원을 다니는 기간은 사회초년생으로 직장일하랴 승진 시험준비하랴 거의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하기 일쑤였다. 당연히 육아와 가정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아이들 목욕시키기며,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직접 해본 것은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인 것 같다. 선단 공포증까지 있는 신랑이라 칼을 들고 요리를 할 수도 없어, 과일 하나 깎아 본 적도 없다.


최근부터 신랑이 하기 시작한 집안일은 설거지와 빨래 게기다. 

설거지도 퇴근시간이 나보다 조금 빨라 집에 먼저 도착하면 내가 오기 전까지 아침에 먹었던 설거지를 한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도 신랑 담당이다. 수건 개기 솜씨는 수준급이다.

그 외에 거의 모든 일은 내가 전담한다. 장보기, 식사 준비, 청소, 아이들 학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기. 

거기다 샤워기가 망가지거나, 전구를 교체할 때의 부품도 모두 내가 다 구입해 교체하고, 망가진 가구 보수며, 못질도 다 내가 한다.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다.)


그런데도 내가 만족하며 사는 이유는...


신랑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남자와 다르다는 것.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결혼하고 2달쯤 지났을까? 신랑과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불현듯 그 상황이 너무 낫설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내가 이렇게 마음 편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의 편한마음은 그동안 불안하고 불편했던 과거의 마음에 대비되어 더욱 선명해졌다. 


신랑과의 결혼생활은 그랬다. 편안함. 안락함.

무엇보다 그게 필요했던 나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든 집안일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 아이와 나를 중간에서 조율해 주고, 내가 선택한 일은 대부분 수용해 주었으며, 성격이 급하고 버럭을 잘하는 나를 옆에서 잘 다독여 주는 마음도 넓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무엇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든 내편을 들어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

변하지 않는 내편.

나는 그게 그렇게 의지가 된다.

친구는 신랑이고 자식이고 다 필요 없고, 나 자신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데. 부모에게 마음으로 기대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아직 나 자신만으로는 단단히 뿌리내리기 힘든지 든든한 지지대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주위에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꼭 결혼하라고. 

원래 인간은 외로운 존재지만. 외로움을 공유할 누군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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