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발돋움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88 서울올림픽이 계최대던 해 나는 겨우 9살이었다. 빨간색 플라스틱 브라운관 TV 앞에서 올림픽 개막식과 함께 흘러나오는 웅장한 선율의 노래에 나는 입을 벌리고 시선을 고정한 체 무엇에 홀린 듯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었다. 어린 나의 시각과 감성으로도 그 노래와 올림픽개막식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지금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의 관점에서 바라본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는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리듬과 깊이 있는 남녀 혼성의 음성보다 더욱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 그 무언가는 바로 노래 속 가사에 있다.

'벽을 넘다.'

요즘 TV를 보거나, 주위를 살펴보면 참으로 많은 벽들이 넘치고 있음을 느낀다.

정치적 이념 간의 벽, 역사적 관점에 관한 벽, 취업장벽, 내 집마련 장벽 그리고 인간관계의 벽...

그중, 내가 겪었던 벽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 일이니, 아마도 5~6년 전 이맘때 일 것이다.

그 당시 둘째 아이가 틱으로 고생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인근 도시 한의원을 일주일에 한 번 들러 치료를 받아야 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늘 신랑이 운전하는 차량에 네 가족이 타고 이동했지만, 그날은 신랑 회사 행사일정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나는 한의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주말 전 오후라 버스엔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였다. 마침, 비어있는 두 자리와 맞은편에 혼자 앉아 있는 중학생 정도의 여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 앉으면 버스가 익숙지 않은 아이 둘을 케어하며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먼저 비어있는 두 자리에 앉히고, 혼자 앉아 있는 여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리가 지정된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의 특성상 빈자리라면 누구나 당연히 앉을 수 있었고, 나의 질문은 자리에 착석하기 전 가벼운 예의였다.


"여기 자리 있나요? 좀 앉아도 될까요?"


중학생 여자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고개 한 번을 들지 않고 묵묵부답 휴대전화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내 말이 안 들나?' 하는 생각에 나는 똑같은 질문을 버스 복도에 서서 4~5번을 한 것 같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똑같은 질문에 작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보아 청력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 아이에게 나는 묘하게 화가 치밀었다.

'어린 녀석이 어른이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차마 속에 든 말을 내지르진 못하고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앙다물고 아이들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문뜩 떠오른 그 여자아이와의 추억?을 소환하며, 그때 느꼈던 분노보다는 세대와 세대 간의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었구나란 깨달음이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들게 된다.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좁고 흔들리는 버스 옆자리를 내어주고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릎과 허벅지 옆선의 반강제적인 접촉을 해야 했던 그 상황이 그 여자아이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같이 타기 싫어요!'라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내 비치기도 두려웠을 터,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며, 귀찮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저 아주머니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기 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 아이에겐 그 순간 버스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에서 바라본 그 아이는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자신만 편안하게 가겠다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대한민국은 70년 전 3년간의 전쟁을 치르며 둘로 나뉘었고,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손엔 그 무엇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죽을 만큼 노력하며 세계 경제 10위 경제대국에 국민소득 3만 달러 나라로 단숨에 성장시켰다. 그들은 모두 하나로 똘똘 뭉쳐 함께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일했다. 그들에겐 그것만이 살길이며, 그로 인한 결과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장본인 들이니까. 그러나 그들에겐 자유와 개인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OECD 38개 국가 중 5위로 높았고, 삶의 행복도도 10점 만에 5.9점으로 최하위권인 34위였다. 자살률 또한 몇 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먹고살기 위한 삶에서 개인의 행복도 돌봐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그땐 정말 '벽'을 느꼈다. 그 어린 여자 아이와 나 사이 드리워진 높고 두텁고, 견고한 벽.

원래 자아가 확고한 MZ세대의 구성원들은 코로나를 겪으며 그 기반이 더욱 단단해졌다. 공동체의 삶으로 단합이 중요하고, 서로서로 삶의 깊숙한 곳을 공유하는 일들은 이미 '라테의 생활'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싫지만 단체를 위해 같이 가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던 이전보다 개개인의 취향이 존중되고, 최신트렌드에 앞서가며, 개인의 삶을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누리고 싶은 마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는 요청하지도 않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찾아내 나의 손길이 닿는 곧곧마다 묻혀 놓기에 이르렀다. 이런 기술의 진보가 편리하다가도 어딘가 씁쓸함을 남기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벽을 치는 분야도 다양하고, 그 벽의 견고함과 높이가 다를 뿐 나름 삶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자신에게 드리워진 벽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그 벽속에 내가 갇혀 버리는 고립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개인적인 삶을 충분히 누리되, 주변도 한번 둘러봐 주는 여유로움만 가진다면, 지극히 개인화되어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고독사 소식이나, 지극히 단체화되어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직장생활로 퇴직할 때쯤 나는 존재하지 않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가장의 이야기는 덜 듣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개인개인의 벽으로 단절되어 버린 서로 간의 마음도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간의 다양성을 존중해 나간다면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나 한계를 넘어 성공을 쟁취하듯 말 그대로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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