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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10. 2023

중딩아들, 요양 중 신랑과 함께하는 주말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연이은 주말 점심. 나는 지금 하이라이트 불이 이글거리는 주방에 서있다.

엄마가 텃밭에서 길러 보내주신 가지는 어슷어슷하게, 호박은 동그랗게 썰어 두고, 스테인리스 볼을 2개 꺼내 한쪽은 밀가루 조금, 한쪽은 튀김가루를 넉넉히 붓는다.

튀김가루는 차가운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묽게 개어 놓고, 썰어놓은 호박부터 밀가루를 앞뒤로 묻힌 후 묽게 개어 놓은 튀김가루 속으로 퐁당퐁당 집어넣는다.

하이라이트 위에 올려진 우리 집에서 젤 큰 프라이팬이 적절히 달아오른 걸 확인한 후 호박을 하나하나 집어 프라이팬 위에 안착시킨다.


덥다. 땀이 목과 가슴팍으로 지르르 흐른다. 주방창이 열려 있어도 바람 한 점이 없다.

이러다 프라이팬에 올려진 호박보다 내가 먼저 찜통 속에서 잘 익은 찜닭이 될 판이다.

그래도. 프라이팬에 올려진 호박은 적절한 타이밍에 뒤집어야 한다. 오른손에 대젓가락, 왼손은 뒤집게를 잡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뒤집으며 나는 초집중 모드에 돌입한다.


꼭 요렇게 뭔가에 집중하며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황일 때 우리 집 혁이 1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옆구리 공격을 시작한다.

양쪽 검지 손가락으로 오른쪽 옆구리, 오른쪽 허리를 1초 간격으로 한 번씩. 쿡. 쿡. 쿡. 쿡.


"엄마. 뭐 해. 뭐 해. 뭐 해. 뭐 해"


집중 중인 나는 늘 시크하다.


"보면 모르냐 시끼야. 전 뒤집잖아."

"나 호박. 가지. 시러.시러.시러.시러"


뒤집을 호박이 아직 많이 남았다. 나는 여전히 프라이팬 호박을 응시하며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옆구리 공격을 경계하기 위해 잔잔한 대화의 수위를 조심스럽게 고조시킨다.


"너 계속. 라면이랑 고기만 먹다가 디진다."

"그래도.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마지막 두 조각이 남았을 때야 나는 저 놈을 떨쳐 버릴 만한 완벽한 한방을 날린다. 스타카토방식으로.

"지금 엄마가 너한테 공격을 퍼부으면. 너는 타박상, 화상, 상을 입을 수가 있어. 뜨거운 프라이팬은 화상, 뒤집게는 타박상. 튀김젓가락은 상. 한방만 더 찌름 바로 공격모드변신이다. "


마지막 호박이 뒤집혀 지자 마자 눈치 빠른 혁이 1호가 바로 도망모드다.

뒤집게를 들고 거실까지 쫓아 나왔다가. 거실에서 요양 중인 신랑님이 거실과 베란다 문을 모두~ 닫고 소파에 누워 계신 게 포착됐다. 그래. 주방창을 열어도 바람 한 점 없음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베란다 문을 닫았었나? 왜 다 닫혀 있지? 더운데?"

정말 의문이란 질문 속에 더워 죽겠다는 표정을 골고루 섞어가며 신랑을 쳐다보자 졸다 뜬 게슴츠레한 눈의 신랑  "응. 추워서 닫았성."


하... 춥단다.. 한 집에서 이리 온도 차이가 클 줄이야! 한겨울 바깥잠이라도 자는 듯 웅크리고 있는 신랑을 보니 추웠단 말이 거짓부렁은 아닌 모양이다. 일단 나는 구워야 할 부침개가 남았으니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요양보다 먹고사는 게 늘 먼저니까. 창문을 부리나케 열고 계속 웅크린 신랑을 지나치려다 나는 맘에 걸려 다시 뒤돌아 한마디를 더한다.

"이불 가져다줘?"

"아니. 이제 괜찮앙"


회사일에 진심인 신랑은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엔진이 두 개 달린 자동차처럼 내달리다 주말 동안은 폐차 직전 자동차처럼 비실거린다. 회사일이 말 그대로 빡세다 보니 주말에 요양이 절실한 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 같이 확연히 다른 가정의 기여도를 따져볼 심산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볼 때면 좀 얄밉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랑에게 그다지 불만이 없다.

유명한 세일즈 교육가는 말했다. [고객을 빚진 상태로 만들어라.]

그들은 또 하나같이 연애와 결혼에 관련된 책도 많이 쓴다. 고객을 대하는 방법과 연애할 때 상대방을 대하는 방법에서의 공통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나는 결혼 전 신랑에게 빚진 상태가 되었다. 신랑은 세일즈 관련 서적도 읽지 않았고(원래 책을 잘 안 읽는다), 이 모든 것을 의도하여 지금의 상태에 이르게 한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오로시  나 스스로 고객이 알아서 빚진상태가 되기로 한 판단이다.


죄책감. 연애시절 서로 간의 사이가 살짝 삐걱거릴 때 나는 잠시 한눈을 판 적이 있다. 그때 너무 힘들어했던 신랑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이 사람에게 나로 인한 아픔은 주지 말자!

그리고. 아버지로 인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술 안 마시고, 도박, 계집질 안 하고.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신랑으로써 믿음직스럽다면. 집안일 좀 안 해도 괜찮다.

내 마음이 편하다면, 육체의 힘듦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각형 대형 접시에 호박부침개 두줄, 가지 부침개 두줄. 그리고 야채를 먹기 싫어하는 두 혁이님들을 위한 소시지 구이 한 줄이 완성되어 식당에 올랐다.

파, 매운 고추 하나 송송 썰어 넣고, 간장 2 숟갈, 참치액 1술, 깨소금, 마늘, 고춧가루, 식초 1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부침개 장도 같이 식당에 낸다.

안 먹어. 안 먹어. 안 먹어. 를 외치던 혁이 1호가 바삭한 부침개를 장에 찍어 한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음. 방금 한 부침개라 그런가 호박이라도 먹을만하네."


음식 앞에서 타박하는 것들은 음식을 뺏어야 한다는 주의인 나는 혁이 1호에게 이야기한다.

"괜찮지? 우리 혁이 이제 야채도 잘 먹는 거야?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엄마들은 어쩔 수가 없다. 한 개라도 좋은 거 더 먹이려고 땀을 삐질 삐질 흘려도 잘 먹어만 준다면 무더위 속에서도 다시 불 앞에 설 수 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점심 먹고 1시간 후에 이러면 좀.. 화가 날 수밖에...

"엄마 배고파. 오늘 저녁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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