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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Mar 16. 2023

금쪽이 엄마. 매화아들.

성인여자 키만큼 아담한 매화가.  잎 보다 앞선 꽃으로 오늘 아침 불쑥 내게 봄을 건넸다.



출퇴근 때마다 오가는 그곳에 그 아이는 늘 자리하고 있었건만

마른 가지에 동그랗고 여린 잎 뽀얗게 분단장하고 노란 수술을 단 꽃치장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 아이가 뒤돌아봐졌다.


원래, 그 아이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매화꽃을 피우는 나무였는데.

봄을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사였는데.

상큼한 매실이 주렁주렁 열리는 과실나무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시커먼 가지만 드리운 그 나무는

겨울 내내 존재 감 없이 아무것도 아닌 듯 거기에 있었다.


사실 좀 조급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어쩌면 다 조급할지 모른다.

기나긴 겨울을 지내는 동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준비 없는 동면기가 영원히 이어질지.

희망과 불안을 오가다 이내 불안이 커지는 시점이 되면.

나는 부모의 사랑이란 명목하에 부모이기에 가능한 아이들의 면면에 대한 집요한 지적을 시작한다.


어느 정도가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이고, 방임하는 것인지.

어느 시점에 아이에게 훈육을 해야 하는 것인지. 지켜봐 줘야 하는 것인지.

어느 수준의 삶의 기대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나중에 원망이 되어 돌아오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대화 끝 끝내 울음을 터트린 첫째와, 엄마 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 끝에 휴대전화를 또 들여다보고 있는 둘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결국은 또, 나의 문제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도 늘 부모가 문제였듯.

그러나, 나에게도 금쪽이였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고, 그 시점 나의 마음을 헤아린 누군가는 없었다.

금쪽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두 아이의 마음을 금쪽이가 잘 알 수 있을까?


그래도 바뀌지 않는 건.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원래 이정표도, 정답도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매화나무였다면 매화는 피겠지? 매실은 또 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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