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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27. 2023

"나 없어도 잘 지내요."

퇴직한 선배의 뒷모습

"이제는 회사에 들어올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잘 지내요."


연말정산을 위해 작년에 퇴직한 반장님이 사무실에 들러 서류를 건네고 건강관리실에 들렀다.

반장님을 보며 다니는 내내 징글징글하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회사를 떠날 땐 나도 저리 미련이 남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퇴직한 그가 여러모로 더 잘 지내야 할 텐데. 한 걱정을 하며 확인차 고개까지 끄덕이고, 걸음이 떼어지지 않아 느릿느릿 뒤돌아서는 그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반장님 건강하게 잘~ 지네세요. "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주섬주섬 챙겨 먹고 시간 맞춰 나가던 일련의 행동들을 갑자기 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그것도 내가 나이가 들어 퇴직한 상황이라면... 난 그래도 한 한 달은 마냥 행복할 것도 같다.

그리고 나선 스멀스멀,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걱정들이 고개를 내밀겠지.

이제 나는 필요 없어진 사람인가? 존재감에 대한 회의도 들것이고... 나이가 들었으니, 점점 병에 걸릴 일만 늘어날 테고. 아이들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결혼 자금이며, 이것저것 돈 들어갈 곳은 많아지는데 돈 들어 올 곳은 없고...


그런데도, 떠나는 그는 남아 있는 나를 그리 걱정해 주었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내가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나에게서 듣는 대답으로 자신의 물음을 간음하려는 생각이었을 수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가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듯 살아가다 어느 순간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인생의 연속선상의 어느 곳엔 가 서 있다. 나도 언젠간 남아 있는 후배에게 '잘 있어'를 이야기하며 회사를 나서는 날이 분명 다가오겠지.


예전엔 이런 생각이 들면 가슴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고 불안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사는게 다 그렇지 뭐...' 하게 된다.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될 텐데. 뒤돌아서는 선배님의 모습이 쓸쓸해 보여 내내 마음에 걸리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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