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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14. 2023

쫌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요.

기간제 2년, 특수업무직 6년 8개월. 2번의 시험과 면접을 거쳐 정규직이 되었어요.

기간제, 특수업무직 기간 동안 호봉인정도 안되었고, 간호사로 입사했는데 면허증 수당도 못 받아요.

그런데, 들어와서 시험도 없이 정규직 되고, 호봉인정도 시켜주는(정책이 바뀌었다나 어쩐다나) 후배에게 승진 축하한다는 말은 안 와요.

어쩔 수 없어요. 배 아프거든요.


둘째가 유치원 때부터 틱으로 고생을 했어요. 운동틱으로 시작된 틱은 급기야 음성틱으로 진행되더니 운동틱과 음성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아이가 수업하는 도중 반아이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어요. 저는 아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낸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팀장이 그러더라고요. 갔다 오면 자리 없어질 줄 알라고. 휴직 낸다고 아이상태가 달라지냐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육아휴직 포기했어요.

그런데, 출산휴가 연이어 육아 휴직 내고, 휴직 기간에도 따박따박 승진하는 후배가 아이 양육이 힘들다며 툴툴거리는 불평에 위로는 못해 주겠어요.

어쩔 수 없어요. 입을 열기 시작하면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거든요.


외국여행 다녀온 후배가 초콜릿을 사 왔어요. 국내에선 잘 못 먹는 거라고 비싼데 언니들 주려고 사 왔다며 탈의실에서 한 개씩 손에 쥐어 주네요. 고급스러운 은박지 벗겨 한 입 베어문 동료 눈이 동그래지더니 맛있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탈의실에 직원들이 모두 나가고 여행 다녀온 후배와 단둘이 남았을 때 나는 후배 옆구리를 쿡쿡 찌릅니다. '거기. 한 개만 더 줘 봐 봐'

쫌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요. 맛있는 거 보면 두 아들 생각이 나고, 맛있는 거 먹고 웃는 아들 표정 보면, 내 마음은 함박웃음이거든요.   


회사에서 거래하는 문구점에 갔어요. 어제 사무용품을 사 왔는데, 빠진 게 있었거든요. 필요한 물건 이것저것이 든 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렸더니, 문구점 사장님이 그러네요.

"어제 물건 값이랑 같이 계산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대답했어요.

"어제, 카드 결제 안된다고 하셔서. 현금결제 했는데요?"

"아니요. 어제 결재 안 하고 가셨는데."

피로, 짜증이 골고루 버무려진 말투였어요. 그래서 저는 찬찬히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어제 사장님이 카드 결제 안된다고 하셔서, 제가 물건이 든 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후 제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 사장님께 건네었어요. 지출증빙이 카드 단말기가 고장 나서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그럼 이번 주 중에 와서 지출증빙 영수증을 다시 받으러 오겠노라는 말씀도 드렸고요. 바로 이 자리에서!CCTV 돌려 보실래요?"

확신에 찬 명확한 말투로 사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이야기를 전개하자 사장님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어요. 뭔가 기억이 나기 시작한 거죠.

"아.. 예.. 어제 손님이 좀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났었네요."

같이 간 동료가 혀를 내두르네요. 내 돈도 아닌데 뭐 그리 열을 올리냐고.

어쩔 수 없어요. 사장의 말이 고의든 실수든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거짓말은 제 성격에 용납이 안되고, 회사돈도 돈이니까요.


어린이날은 늘 돌아와요. 매년 한 번씩. 그런데 어린이라고 정의 내리기에 매우 곤란한 두 아들 녀석이 자꾸 어린이날 선물을 요구하네요.

"네가 뭘로 봐서 어린이야? 엄마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밥은 두배로 먹어서 덩치가 산만하니 몸도 어린이가 아니고, 엄마 말은 지지리도 안들어 착한 어린이 마음 또한10원어치도 안 남아 있는데."

두 아들 눈엔 동일한 열망이 감지돼요. 선물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은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

"나 아직 어른 아니니까. 어린이지. 선물 사줘."

어째, 간절한 소망 치고, 답변이 많이 허술해요. 요럴 때 나는 희한한 호승심이 발동하지요. 아들램이 이겨먹어서 뭐 하나? 하고 마음속 저 깊은 곳 흰색 옷 입은 내가 속삭이다가. 검은색 옷 입은 내가 와락 끼어들어요. 어린이날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 그냥 쉬는날이다. 요 녀석들아~

그래서 나는 회심의 한방을 날려 봅니다.

"너네들은... 어버이날 뭐 사줄 건데?"

눈빛이 흔들리네요...내가 이겼어요.

쫌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요. 나도 사람이잖우? 아무리 부모라도 어버이날 감사합니다. 편지한 통도 없는 요 녀석들에게 호락호락 선물 안기고 싶지는 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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