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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Oct 05. 2022

쓸모있는 고통

아이의 수학여행을 보며  든 생각 하나.

"엄마 나 내일 저녁 자기 전에 불닭볶음면도 먹을 거야."

"친구들이 게임한다고 텝도 가져가 온다는데 나도 챙길까?"


고대하던 수학여행 전날 아이는 캐리어에 짐을 챙기며, 2박 3일 동안 할 일들을 열심히 되새겼다.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노라 다짐한 듯할 일들을 곱씹어 대며.


사실, 나와 신랑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덩달아 우리 아이들도 여행할 기회가 다른 가정보다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드물게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전날부터 설레 하는 아이들인데, 엄마 아빠와 함께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 오죽 좋을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제약하는 이 없이, 하면 안 될 것 같은 행동을 더 많이 해야 재밌다 부 축이는 개구쟁이 절정 중2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 기쁨은 더할 것이다.

거기다 덤으로 학원도 안 가고, 학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해도 된다.

아이들 말로 '개꿀'이다.


아침 7시 30분까지 도서관 앞에서 모인다 해서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토스트를 만들었다.

그제 사놓은 곡물 식빵에 계란을 한쪽만 입혀 노릇하게 먼저 구워 놓는다.

그런 다음 양배추, 양파, 스팸을 썰고 계란을 섞어 소금 간을 살짝 해 네모 모양으로 굽는다.

그리곤, 식빵에 딸기 잼을 양옆으로 바르고 구워 놓은 양배추 패티를 넣어 길거리 토스트를 완성한다.

빵을 굽는 사이 벌써 큰 아들이 일어났다.

평소엔 확성기를 틀어도 일어나지 않더니, 여행이 좋긴 좋은지, 주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발딱 눈이 떠진 모양이다.


토스트 한 개를 뚝딱하고, 새로 산 트레이닝 복을 입고, 캐리어를 끌고 7시 5분. 집을 나섰다.

도서관 앞은 일찌감치 온 친구들이 벌써 진을 치고 삼삼오오 모여 게임 리그를 즐기고 있었다.

"잘 다녀와. 애먼 짓 하지 말고."

"엄마, 애멋 짓은 국룰이지."

오늘도 역시 한마디도 지지 않고, 케리어를 끌고 친구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간다.


참 많이 컸다.

2.38kg으로 태어나, 팔다리가 극세사 같고, 우는 소리도 여렸던 아기였는데...

15년 동안 6척 가까이 큰 건장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15년 동안 내가 부모 역할은 충실히 해냈던 모양이다.

한 생명을 어엿한 인간으로 키워냈으니...


처음 아이를 낳고, 길거리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를 바라봤을 때가 생각이 났다.

먹는 것, 잠자는 것, 행동하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나는 세상 모든 부모들이 다 위대해 보였다. 어찌 이 힘든걸 다 이겨 냈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나에겐 새로운, 이재 것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의 세상이 열렸었다. 그리고 지금은 참 감사하다.


고통은 쓸모가 있다. 고통이 있어서 참다운 감사함도 가질 수 있다.

감사하다. 오늘 문득,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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