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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Oct 25. 2023

안개는 곧 걷힙니다.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

며칠째 베란다 창너머 안개가 자욱하다. 인근 커다란 댐의 영향으로 봄가을 이맘때쯤 꼭 짙은 안개가 자주 아침에 찾아들곤 한다. 선명하게 보이던 창너머 아파트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아파트 마당에 있는 소나무도 쑥버무리에 끼인 쑥줄기처럼 희미하다.


최근 ADHD 진단을 받아 약 복용을 시작한 둘째의 등교를 위해 오늘도 출근 전 안개를 뚫고 학교로 먼저 향한다. 확실히 약복용을 시작한 후로 아이는 안정된 모습이다. 불쑥 뿔쑥 치솟던 분노도, 똑같은 상황도 거칠게 표현하던 양상도, 수업시간 멍 때리는 횟수도 잦아들었다.  


[우리 이쁜 볼딱지(어려서부터 유난히 볼이 통통해서 어려서부터 집에서 불려지는 별명이다) 요즘 학교는 다닐만하신가?]

[여전히 재미는 없지.]

[그렇지. 학교가 막~ 재밌고 그런데는 아니지.]

[그냥 요즘 좀 생각이 많다.]

[무슨 생각이 많으실까? 우리 이쁜이가?]

[그냥. 나는 나중에 어른되면 집에서 술 먹고, 게임만 하고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뜨끔거렸다. 아이는 자신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없고, 열정도 없고... 아이의 그런 생각은 분명 내가 내 뱉은 말 어딘가 묻어있던 아이 미래에 대한 예상일 것이다.

-너 공부 안 하면, 직장을 어떻게 구할래? 공부를 안 할 거면 다른 거라도 네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자꾸 게임만 할 거니?-

나는 어쩌자고 아이의 미래를 이토록 참담하게 그려 댔을까? 대체 무슨 권리로... 진작 ADHD 진단을 받아 볼걸. 그럼 아이에게 건네는 부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그럼 이렇게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늘 후회는 늦다.


미등을 킨 자동차는 안갯속을 헤집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차 안은 정적이 흘렀고 나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마음이 아팠다.


[OO아. ]

[네?]

[지금 차 타고 가는데 안개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

[네.]

[지금은 안개 때문에 저 멀리 길 끝이 보이지 않지만, 햇빛이 반짝 뜨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한순간에 걷혀. 안개는 햇빛을 이길 수 없거든. 우리 OO 이는 지금 안개 낀 길을 걷고 있는 거야. 안개길을 걸으면 OO이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앞이 잘 보이지 않고, 가야 할 길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지 불안하고. 그런 마음이 든단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인생엔 다 햇빛이 쏟아져. 곧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엄마는 늘 OO이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미리 걱정하지 말자.  ]

[응...]

[엄마는 우리 OO이가 미래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직장보다 OO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거기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면. OO 이는 아주 잘 살고 있는 거야. 엄마는 걱정 하나도 안돼. 엄마는 OO 이를 믿거든.]

[끄덕끄덕....]


이제야 엄마 역할을 조금씩 알아간다.

내 생각이 앞서 나가 아이 생각을 억누르는 일 없이, 온전히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는 엄마.  

물론, 나는 여전히 미숙한 엄마고, 또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뒤돌아 자책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니까.

아이와 함께 나란히 발을 서로 맞춰가며 잘 걸어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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