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침나절이 영하로 돌아서니 가을도 버틸 제간이 없는 모양이다. 서둘러 겨울준비에 나서는 나무는 애꿎은 나뭇잎만 손절이다. 거 좀 붙여 두지. 봄에는 오는 비 잎사귀가 입이 되어 내리는 족족 다 머금어 주고, 여름엔 내리쬐는 태양뼡 다 받아내 무럭무럭 키워줬는데 필요란게 없어지면 자연은 그저 떨궈내기 바쁘다. 야속하다.
필요란 것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게 필요란 존재감, 기여도쯤 될까?
첫째 아이를 가지고 낳았을 때 나는 내 몸의 기관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뼈절이게 깨달은 바가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했던 내 몸의 구성요소가 철저히 종족번식을 위한 기관이었음을 띵띵 부어오른 가슴과 아이가 나왔음에도 볼록한 아랫배를 보며 확신했다.
그렇게 일거수일투족, 숨 쉬는 것 외에 내가 모든 면에서 필요했던 아이는 서서히 혼자 살아가고,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행동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차려놓은 밥은 안 먹고, 라면물을 올리고,
아침나절 영하라 두꺼운 외투 준비했더니, 스타일에 맞지 않다며 얇은 바람막이에 둘러매는 모습에
쒜끼. 살만 뒤룩뒤룩 찐다! 얼어 디진다! 를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이유가 있지. 나무도 살아야 하니까.
애들이 말을 안 듣는 이유도 있지. 언제까지 내가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하니까.
이렇게 생각해도 쳐다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요럴 때 집을 나와서 커피 한잔 해야지... 떨어지는 은행잎 밑에서
그러고 보니 떨어지는 은행잎... 아주 필요한 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