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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09. 2024

겨울산행

ADHD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께...

2달 만에 등산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가는 것조차 망설여져 재활용품 테트리스 쌓기가 겨울 놀이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딱 겨울이구나 싶은 낮에도 영하를 밑도는 주말 아침. 신랑은 나의 등산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등산스틱, 장갑, 귀마개, 모자, 비염으로 운동 중 숨이 차오른다 싶으면 땀보다 먼저 신호를 보내는 콧물대비로 손수건까지 손목에 야무지게 감아 묶었다. 추운 겨울이라 한산하리라 싶었던 등산로입구 주차장에는 제법 많은 차량들이 들어서 있었다. 역시 추워도 운동은 현대인의 필수인 모양이다.

채비를 마친 신랑과 나는 등산 스틱을 집고 다리를 옮기고, 스틱을 집고, 다리를 올려놓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됐다. 내가 자주 찾는 인근 산은 등산 50분 하산 40분.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처음 25분은 가파른 계단과 능선이 이어지고 이후 완만한 산길을 걷다 마지막 꼭대기 10분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코스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가파른 대략 35분간의 구간을 즐긴다. 숨이 차고, 허벅지 근육이 뻐근하고, 온몸 구석구석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그 순간... 온몸에 피가 근육과 뼈에 집중하느라 뿌옇고 복잡하게 나뒹굴던 나의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그때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나의 벅찬 숨소리뿐. 그 숨소리는 메트로놈처럼 꼬이고 뒤틀린 생각의 템포를 적절히 조율해 준다.


둘째가 ADHD약을 거부하고 나섰다. 약의 부작용으로 약간의 틱이 동반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약에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미 틱으로 오랜 시간 고초를 겪은 후 겨우 좋아진 아이는 꽤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바로 틱증상이 좋아질 수 있고, 약간의 증상이 있는 체로 치료를 계속 이어 갈 수도 있다고 설득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서도 학업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유튜브만 들여다보고 있다.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봐서 거북목도 심하게 진행되어 있고, 목통증까지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틱에 가장 좋지 않은 것이 바로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전자매체의 과다한 노출이라고 수도 없이 말했건만, 아이는 모든 잘못을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고 있는 약으로 돌렸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들끓다 못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신랑은 그런 나를 잘 알고 있다.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 마음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마 오늘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강풍특보가 있었어도 등산채비를 개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 산행이라 입이며 볼이 얼어붙어 따갑던 감각이 점점 무뎌져 갔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가슴도 조금씩 잠잠해졌다. 땅만 보고 무심히 산을 오르던 나의 시야에 다른 등산객들의 발이 보였다. 올려다보니 올라서고 있는 나를 배려해 길옆에서 기다려 주고 있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들도 나를 기다려 준다. 주위의 사람들도 나를 참아준다.

나만 참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하물며 내가 내 아이를....


다른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이를 그렇게 방치해도 되겠냐고, 어떻게 든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우리는 조바심이 났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를 키워선 안된다는 듯. 아니, 그 기대는 다른 사람들만의 것이라도  할 수 없다.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자녀의 상이 더 컷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 시간에 맞춰 착착 걸어가지 않는 아이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한비야는 말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시간표가 있다고. 다른 사람이 만든 시간표 말고, 자신의 시간표대로 가라고. 누군가가 보기엔 한참 늦은 듯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자신의 시간표대로 갈 때까지 많이 사랑해 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참 늦은 자신을 보고 절망하며 삶에 무릎 꿇고 싶을지 모를 아이옆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자고.

어쩌면 그것이 부모의 진정한 역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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