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육이 타버렸다.
30분 동안 아파트 뒤 공원을 뛰고 왔더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탄내가 진동을 한다.
[운동하다가 탄내가 나서 가봤더니 벌써 이만큼 탔더라고...]
뛰러 나가기 전 스쾃 중이던 신랑에게 주방에서 탄내가 나는지 예의 주시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섰다. 불을 더 많이 줄여 뒀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탄 냄비를 들여다보며 신랑이 영 미안해하는 눈치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집게를 집어 들었다.
[탄부분만 잘라 내면 되지요~뭐가 걱정이야~]
하며 들러붙은 고기를 집게로 뜯어 내렸는데 까맣게 태닝 한 고기 녀석은 냄비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 버렸는지 옴짝 달싹을 하지 않는다. 억지로 고기를 집어 뜯느라 입을 앙 다물고 힘을 줬더니 집게는 고기대신 조려진 간장양념만 사방으로 뿌려주시고 고집불통 고기 녀석은 냄비바닥만 고수했다.
[쒜끼. 고집 쌔네~그지?]
어찌어찌 라텍스 장갑을 끼고 고기 몇 점을 건졌다.
까만 부분만 도려 냈더니 맛은 그럭저럭 괜찮다.
[다이어트하라고 또 이렇게 알아서 양조절을 해주시네~]
멋쩍어하는 신랑을 보며 젓가락을 입에 물고 실없이 고개를 들이밀며 씩 웃는다. 날 따라 신랑도 피식한다.
이러고 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살이 물러 여름만 되면 엉덩이가 잘 짓무르는 신랑. 소독도 해주고, 연고도 발라주며.
목욕할 땐 등에 때도 밀어주고. 옆구리 살이 빠졌네~ 칭찬도 넌지시 건네며.
신랑 출장 갔다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라테가 식탁 위에 슬쩍 올려져 있으면 나는 마냥 좋아해 하며 신랑 앞에서 빨대로 쪽쪽 빨아가며.
흰머리가 머리카락 반을 덮은 신랑 TV 보고 있는 옆모습 보고 측은해 머리카락이라고 한번 쓸어 넘길라 치면. 흰머리 한올도 소중하다며 철벽을 치는 신랑 귀엽게 바라봐 가며.
살아가는 게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재벌도, 나도 하루 밥 세끼 먹고, 밤에 잠자고, 낮에 일하며 살아가는 건 똑같은데, 뭐 하러 안달복달, 애걸복걸, 전전긍긍 머리 싸매고 씨름을 해가며 살아야 하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중학생 두 아들을 보면서도 생각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엄마의 노력과 헌신과 희생은 엄마가 자처한 노고 일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고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놔주길 바란다. 엄마의 모든 노력은 아이들을 옥죄는 속박일 뿐이었다.
첫째 아이가 '엄마가 나 어릴 때 억지로 공부시켰잖아'라며 고개를 주억이며 울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원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면서 점점 놓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해 하는 방법도 배워간다.
까맣게 탄 동파육으로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다음엔 불조절을 잘해야겠구나. 적은 양이라도 반찬으로는 넉넉하구나. 무엇이든 과한 관심은 접어두되 방치하면 안 되겠구나. 가장 중요한 것...고기는 타도 맛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