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제품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분명히 받았다.
하품을 입안가득 참고있는 교육 중 시선은 열강하는 교수의 얼굴을 더듬으면서도 스마트 워치로 전송되는 모든 문자, 카톡은 진동으로 느끼며, 흘끔흘끔 돌려보다 보니 머릿속엔 휴대전화와 대화의 장이 열렸다.
음... 시킨 게 왔군....
구매확정을 왜 니들 맘대로 하냐?
학부모 총회... 나 이런 거 싫어하는데...
카드 이벤트... 음.. 치킨 사은품 좋아...
그렇게 교육을 마치고 휴일이 지난 후 출근 했는데. 있어야 할 택배가 없다.
택배 보관함을 눈으로 훑고, 손으로 쓸고, 이쪽저쪽 기마자세를 갖춰가며 뒤졌는데도... 없다.
구입처에 당장전화 했다. 분명 문자를 받았는데, 물건은 없노라고 하소연 했지만, 분명히 보냈으니 확인하시라만 돌아왔다. 말끝에 멘붕도 따라 왔다.
예산 275만 원을 들인 CPR용 인형이었다. 분실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몰아쳤다.
이런 적이 없었다. 택배 왔어요 문자 후 택배가 오지 않은 경우. 보냈어요 확인 후 없어요가 돌아온 경우. 완전 예상되었던 상황에서 미지의 세계에 입성한 경우가.
엉덩이는 의자에 붙여 놓고, 머리는 단내가 나게 굴렸다. 손가락은 책상 위에서 태풍이 온 것처럼 출렁였다. 왼쪽 아랫입술은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중이다.
CCTV를 돌려 봐야 하나. 분실인건가. 미배달인건가. 결국 못찾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 결국 한숨이 터져 나오는 사이 견학담당 후배가 건강관리실로 들어섰다.
쑥아.. 택배가 엄써.
네? 어디갔지?. 부피가 커요?
응. 5개라 허리춤 까지 쌓일꺼거덩. 덩치가 커서 바로 보일 텐데. 아무리 택배보관함을 훑어도 엄써. 비싼 건데. 275만원! 가격도 안 잊어버려!
언니. 제가 함 찾아볼게요.
금방 보고 왔어~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견학 후배에게 벽도 뚫는 투시 능력이. 없던 것도 만들어낼 마법이. 택배의 이동경로를 유추해낼 추리능력이 잠재되어 있기를 기대하면서.
머리를 툭 떨어뜨리고 망연자실한 내가 후배 목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다.
찾았단다. 택배보관함. 거기 있단다. 내 눈깔은 뭐지? 싶다가 다행이다로 얼른 갈아탔다. 지금 보관함에서 그걸 못 찾은 나를 탓할 시간이 아니다. 그걸 찾아낸 후배에게 강렬한 칭찬을 해줘야 할 시간이니까.
있어? 거기 있어!
네 언니 여기 바로 쌓여 있는데~
택배 보관함 옆에 큰 택배물들이 쌓여 있는 그곳에 떡하니 다섯 녀석이 있었다. 내가 너는 왜 안 보여? 하며 한심하단 듯. 허리 보다 더 높이 쌓인 크기를 자랑하며 보란 듯. 거기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상황에. 나는 왜 우리 둘째가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일이다. 리코더를 사달라고 했다. 그다음맨트에 신랑과 나는 혈압이 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달라고 한 그날이 음악 수행평가날이란다. 연습은 어떻게 했냐니까 친구 걸 빌려서 했단다. 집에선 연습을 왜 안 하냐니까 학교에서 했단다. 얼마 후에 중간고사인걸 뻔히 아는데 학습지 한번, 책 한 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집에서는 늘 멍하게 휴대폰만 응시했다.
쌓인 답답함은 이내 입에서 눈에서 행동으로 폭발했다.
너는 인생에서 중요한 게 대체 뭐야?
하고 싶은 게 휴대폰 보는 거 말고는 없어?
공부가 하기 싫으면 다른 거 라도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게임이랑 유튜브만 보면 네 미래가 창창하게 열란다던?
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냐?
폭포수 같은 질타는 질문이라는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사춘기라이긴 하다. 공부가 하기 싫다는 것도 내가 해봤으니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 영혼 없이 껍데기만 존재하던 육신이 먹을 때와 게임할 때만 반짝 불이 들어왔다가 그 이후엔 아예 차단기를 내려버리는 상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가장 꼭지를 돌게 하는 건 차단기가 내려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보겠다는 의지도, 생각도, 노력도 전무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어찌할 수 없어 머릿속만 골칫거리로 가득 채웠던 둘째가 내가 보지 못했던 택배 상자를 보는 순간 가슴속으로 툭 떨어져 내린 것이다. 마음이 싹싹 쓰리고 아파왔다. 그 아이의 진짜 마음과 진가를 나만 찾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눈앞에 두고도 선택적맹인처럼 허우적거리며,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을 수도있겠구나. 아니, 자발적 맹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랬던 아이니까. 오늘도 그렇구나란 포기로 나 스스로 셔터를 내려버렸을 수도.
가까운 도시에 ADHD 진단 병원에 예약을 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데 지속적인 질책을 받아왔다면, 그것만큼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까?
보이지 않았던 택배에서 또 하나 배웠다. 계속 계속 배워간다.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