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200편이 넘는 글을 주저리주저리 휘뚜루마뚜루 올려놓고도 새삼스럽게 글쓰기가 막연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를 일이고, 나 자신을 양파 껍질 까듯 뽀얗게 까발려 보일 확신도 서지지가 않는다. 갈수록 더 하다.
책 [시선으로부터]에서 주인공 시선은 이렇게 말한다.
"많이 읽는 사람은 언젠가 쓰게 되어있다."
그 생각은 올초부터 해왔던 생각이었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책 읽기에 이토록 소홀해도 되나 싶은 마음으로 한 달에 5권 이상 손에 잡히는 데로 읽어 댔다. 에세이,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자전적, 몽환적 소재도 따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지극한 내리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었고, 무라카미하루키는 [어둠의 저편]에서 마치 나의 시선이 드론의 카메라인양 방에서부터 한 도시를 저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탐험을 하게 해 주었으며,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에서는 극히 현실적인 나에게 비현실성을 현실처럼 바라볼 수 있는 세계도 열어 주었다. 책은 읽을수록 더욱 빠져 드는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나처럼 눈 양옆을 가리개로 가리고 정해진 길을 경주마처럼 내달려 다양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욱더.
그러나 그 매력이 더해가면 갈수록 나는 끝없는 하강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땅속을 파고들듯 저 멀리 선 잡힐 듯 아련해 만만해 보였던 녀석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높은 기세에 질려 눈을 마주하고 설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어 선택, 문장해석력, 매끄러운 글의 흐름, 몰입시키는 사건전개, 글을 쓰는 집중력...
내가 아니라 기꺼이 글 속의 그가 되는 작가의 세계는 아직 먼 꿈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