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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Nov 17. 2023

108배. 해보셨나요?

법당 한편에 켜켜이 쌓아둔 모포하나를 조용히 집어 들어 법당 중앙에 가지런히 펼친다.

불전함에 불전을 넣고, 가슴 앞에서 합장을 한 후 펼쳐 놓은 모포 뒤로와 바르게 선다.

이제부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았던 손은 모포 앞으로 구부린 무릎과 함께 가만히 내려 바닥에 닿은 이미 양옆에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펼친 후 이마를 때고 다시 손을 합장하며 구부렸던 무릎을 펴 바르게 서면 하나. 이 같은 절을 두 번 하면 둘. 셋. 넷..


노조수련대회를 산속 깊은 산장에서 하기 시작하면서 수련장소와 걸어서 10분 거리인 인근절에 1년에 한 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곳에 절이 있네였고, 두 번째는 법당에 한번 올라가 볼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왔고, 그다음엔 법당에서 삼배를 했으며, 이후로는 들를 때마다 108배를 했다.


108배는 불교에서 108개의 번뇌인 괴로움의 원인을 잠재우고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108개 밖에 없겠냐 만은... 굳이 힘든 일이 있을 때 100번이 넘는 절을 불교에서 시키는 이유를 알 듯도 하다. 절을 하는 사람은 107배나 109배가 되지 않기 위해 절을 할 때마다 절을 한 횟수에 집중하며 절을 한다. 그리고 절을 하는 동안 우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닿도록 숙이고 다시 일어나는 노동에 가까운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게 100번이 넘는 절을 하는 행위에 골몰하는 동안 절을 하는 사람은 절을 찾게 만든 고민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온몸을 움직이며 절을 한 이후엔 운동과 친하지 않았던 다리는 달달 떨릴 것이고, 땀도 슬쩍 배어 나올 것이다. 그런 상태일 때 우리 몸은 어김없이 엔도르핀이란 물질을 방출한다. 그물질은 마음속에서 요동치던 생각을 조금씩 가라앉게 만든다.


절이 위치한 주변환경도 한몫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 계곡 물소리, 산에 묻어나는 풀냄새, 가끔 스치는 꽃향기, 은은한 향냄새,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법당 나무바닥, 자비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님.

절에 들어서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다. 일전에 인근 도시 성당을 들렀을 때도 그랬다. 규모가 괭장히 큰 성당이었는데. 한 줄로 곱게 줄지어진 길다린 나무의자들 저 멀리 가운데 위치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은은한 조명, 단상 우측에 마련된 파이프 오르간. 그 커다란 공간을 채운 공기마저 나를 감싸 않는 듯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았었다. 


나는 절실한 종교 가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든 누군가에게 마음의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겐 괭장히 의미 있는 것이란 생각은 든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비탈길을 터벅터벅 혼자 내려오는데 때 이른 눈발이 주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내리는 눈을 손바닥에 가득 담아 볼 요량으로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한참을 벌 스듯 기다려도 내려앉은 눈은 따뜻한 나의 두 손에 녹아 없어지기 바쁘다. 

걱정이나 고민도 이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든다. 분명 내 주위엔 고난과 슬픔을 일으킬 원인들이 산재해 있지만 내가 그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것들을 녹여 없앨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들은 나에겐 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질 작은 눈송이 일뿐이지 않을까?

108배가 효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삶은 깨달음과 배움의 연속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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