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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Nov 05. 2023

나 홀로 커피 한잔

어젯밤 빗방울이 흩뿌리듯 날리더니 아침엔 뿌연 하늘이 아침을 열었다. 파란 하늘을 가린 구름. 대낮임에도 낮은 조도. 나무 잎사귀를 젖게 만드는 적당한 습도.

글쓰기에 참 좋은 날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바람이 적당해서. 비가 와서 비가 오지 않아서. 도깨비님은 모든 날을 적당한 날이라 했던가. 무튼, 한 글귀 남기고 싶은 날이 글을 쓰고 싶은 날이겠지.


어제 나는 살아가는 동안 잘해보지 못했던 일을 했다.

신랑의 과잉보호로 면허 딴지 25년째인데도 지역 톨게이트 반경 2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내가 기어이 1시간 이상 고속도로 운전을 해냈다던가. 용감한 형사나 스모킹건 같은 범죄 실화스토리에 심취한 내가 새벽시간 혼자 동네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녔다던가. 혹은 회사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자 직원과 아무렇지 않게 술 한잔을 했다던가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겐 일상일 듯도 하나 어떤 이는 하기 힘든 일.

카페에 여유 있게 혼자 앉아 차 마시기.


결혼 전엔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늘 같이였고, 아이가 생긴 이후엔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일. 버스시간에 쫓겨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시간을 죽이기 위해 그곳을 가는 게 아니라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주위도 나도 돌아보고 마음껏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카페 나들이.


신랑은 축구를 즐긴다. 손흥민, 황희찬이 선발출전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물론 국내 경기, 축구 관련 예능도 꼭 챙겨 보는 애청자다. 거기다 본인도 사내 축구 선수로 활약 중이다. 그렇게 여름이고 겨울이고 뛰어다니다 보니 양쪽 눈 밑으로 기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 더니 슬슬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얼른 인근 병원 피부과에 색소 관련 치료로 예약을 했다.


[열 번을 어떻게 받지. 완전히 깨끗해 질지도 모른다고 하고]

[2주마다 가다 보면 어느샌가 끝납니다. 더 진해지는 건 막아야 하잖아.]

   

피부과에 남자 혼자 들어가기 뻘쭘해하는 신랑에게 늘 같이 가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치료를 들여보낸 첫날 주위를 둘러보다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 문뜩 깨달았다.

이렇게 여유롭게 혼자 카페에 온 게 처음이란 것을.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음료와 함께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홀 중간중간 동그란 의자를 삼등분으로 나눠 중앙으로 등받이에 기대앉을 수 있게 마련된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은 여성의 머리카락은 풍성해 보일 심상인 듯 제법 컬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땋은 머리끝을 등받이가 낮은 의자 위로  올리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자 그녀의 머리 바로 위에서 빛을 발하는 조명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30센티는 되는 양 의자 바닥까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처음엔 그게 진짜 머리카락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보다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듯 휴대폰을 응시하는 젊은 여성은 휴대폰을 보는 바른 자세를 익힌 듯 목과 휴대폰을 거의 11자 형태로 고정하고 휴대폰화면을 눈 위로 들어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음.. 오래 봐도 목은 아프지 않을 듯한데 팔을 아프겠군 하며 나도 휴대전화를 눈앞에 가져갔다가 이내 내렸다.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뭔가 열심히 작성하고 있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양반다리로 자리를 잡고 앉아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다리가 다소곳하게 내린 자세가 된 것은 곧이어 도착한 호리호리하고 검은색 안경을 착용한 세미정장 차림의 남성이 오고 나서였다. 모니터에 정성을 쏟던 그의 눈은 호리호리한 검은 안경과 모니터에게 모두 정성을 쏟느라 한층 더 분주해졌다. 사람의 감정은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구나. 나는 혼자 또 고개를 끄덕였다. 

50대로 보이는 6명의 남녀는 정장차림으로 격을 갖춘 듯 상대방이 대화에 집중하고 적절히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엔 하나같이 빨리 정말 편안한 주말을 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엿보이는 듯했다. 돌이 갓 지난 듯 보이는 쌍둥이 딸을 유아 전용석에 앉히고 대화 중인 부부는 이 모든 공간에 모인 모든 사람들 중 유일하게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주말은 모두에게 그러해야 할 시간인데. 나의 두 아들들은 보통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였던 관계로 커피숍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란, 커피원산지를 찾아가 적절히 익은 커피 열매를 채취하고 적절한 온도로 볶아내고 그것을 갈아 직접 드립 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오픈 주방인 홀 안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유리그릇이 청량하게 부딪히는 소리, 준비된 음료가 나왔다고 외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잔잔하게 흐르는 커피숍의 배경음악을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준비된 커피를 마시며 바람에 이따금씩 흔들리는 가로수의 잎을 보며 묘한 안정감을 맞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보고. 그속에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일이 앞으로 9번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되기 까지 한다.  


우리는 엉망인 것 같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길에 후회가 남을지라도 의미는 있기 마련이다.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도, 완벽하게 실패한 사람도 없는 게 인생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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