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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28. 2023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 대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신랑이 마침 회식이라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들 녀석들 취향대로 앞다리살 한 근을 퇴근길 마트에서 사 왔다. 간장베이스로 고기를 재워두고, 아이들 학원 마칠 시간까지 1시간 여유가 있어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요가를 시작했다. 


근력 요가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처음엔 30초씩 무릎을 굽힌 상태로 버티기가 너무 힘에 부쳐 이건 사람의 경지가 아니란 생각에 요가 동영상 언니의 동작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혹시 정지 상태로 편집을 했나 심각하게 의심스러워서.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 버틸 만 해 졌다. 여전히 힘들고 허벅지 안쪽 근육이 달달 떨리지만, 도저히 안돼에서, 이 정도는 버틸만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요가가 끝나자 요가하는 동안 눈에 거슬렸던 방바닥 머리카락을 수거하기 위해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거실만 쓱~ 밀려고 했던 청소기가 안방, 아이들 방, 주방까지 바닥 정리를 다 마친 후 청소기 먼지통을 털어내려 뒷베란다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먼지 통을 꺼내 청소기와 부딪혀 가며 탈탈 털고 있는데 베란다 바닥에 노르땡땡하고 통통한 쌀알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최근에 쌀정리를 한 적이 없는데...


엄마아빠가 농사를 지으셔서 나는 20kg씩 쌀포대기에 쌀을 받아온다. 그러면 그날바로 손수 제작한 깔때기를 1.5리터 우유병입구에 대고 일일이 소분해 쌀을 정리한다. 포대기에 그냥 두고 먹었다가 수많은 비행물체가 쌀들을 점령하고, 주방을 점령하고... 거실까지 넘나들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후로 나는 철저히 쌀을 소분해서 밀봉하여 보관한다. 우유병에 든 쌀은 벌레를 키우지 않으니까.

먼지를 다 털어내고 바닥으로 앉아 쌀알로 추정되는 그것을 유심히 드려다 보자 쌀알이 위아래로 한 번씩 꿈틀꿈틀거렸다. 허걱....


자세히 보니, 쓰레기 봉지 안쪽엔 벌써 쌀 모양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이 녀석은 그 둘 중 밖으로 산보를 나온 모험심이 강한 녀석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 용납하지 않은 생명체가 맘 편히 진을 치며 살아가도록 그냥 두지 않는다. 부리나케 봉지를 여미고, 다른 쓰레기통들도 모두 수거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쓰레기통을 다 정리하는데, 좀 덜 차서 좀 있다 치우자 했더니, 이 사달이 났다. 거실, 주방, 화장실 쓰레기통을 다 정리하고 봉지를 묶어 쓰레기봉투에 밀어 넣는 순간. 

앗.

예리한 무언가가 검지손가락과 손바닥이 연결된 부분을 쓱 훑고 지나갔다. 3초 뒤.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스미듯 상처모양을 되새기며 올라섰다.    

 나는 손가락을 꽉 쥐고,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지혈을 시작했다. 벌써 아이들 픽업시간이 10분 전으로 다가섰다. 쥔 손가락을 어찌어찌 소독 하고 상처 마무리 후 샤워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나서며 벌레가 칩거 중인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었다.


마음이 급해지면, 자꾸 더 늦을 일이 생긴다.

병원 근무를 하며 종종거리고 종횡무진 중이었던 나를 보고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할 필요 없다. ]


한 세월을 거의 다 보내 본 어르신들은 아시겠지. 

종종거린다 하여 없던 것이 생기지 않고, 아등바등한다 하여 안 되는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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