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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Dec 26. 2023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부터 그렇게 했는지,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으니 유치원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먹고살기 바빠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부모님이 가리켜 줄리도 만무하다.


그런데도 나는 5살 때부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면 머리맡에 늘 양말을 두고 잠이 들었다. 그 양말은 양말 소쿠리 속에서 고르고 또 고른 것으로 구멍 난 곳이 없고, 크기도 좀 큼직한 녀석으로(큰 선물을 받으면 양말에 들어갈 수 없으니) 조그만 내 손바닥에 올려 크기를 가늠해 가며 고른 것이었다. 그렇게 선물을 학수고대하며 오지 않는 잠을 일찍 청했음에도 크리스마스 아침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나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 그때의 그 절망감이란... 나만 혼자 세상 한 구석에 버려 진 듯한 소외감. 비통함. 끝없는 눈물...


처음엔 머리맡에 둔 양말이 작아서일까 싶어 양말 말고 할머니 버선을 둬보기도 하고, 자다가 베개에 깔아 뭉개진 양말이 보이지 않아 선물을 주지 못하나 싶어 머리맡 벽에 압핀을 구해다 붙여 보기도 했다. 그 짓을 4~5번 하다 10살 즈음되었을 때 때려치웠다.

그리곤 결론을 내렸다. 나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니까. 더 이상 치사하게 선물을 구걸하지 말자!로.


그리고 마흔 중반이 되는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내 기억으론) 대신,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선물을 준다.


올 겨울엔 숏패딩 하나 사야지? 오키오키...

피곤하지? 하루 휴가 내고 집에서 놀자 암 껏도 안 하고. 오키오키...

우울해? 바닐라라테 한잔 때리러 가자~ 오키오키..

힘들어? 하지마 하지마, 그게 뭐 별거라고 그거 안 해도 잘 살아! 치맥이나 하자!


선물은 내가 나에게 주면 된다.

내 행복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누군가의 행위에 저당 잡힐 수는 없다. 

맞아. 그럼 인생이 너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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