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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Dec 28. 2023

커피끼리는 사이가 안 좋다.

원두와 가루커피는 같이 드립 하지 마시길...

출근길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연신 하품이 쏟아진다. 나는 지금 눈을 부릅뜨고 신호를 봐가며, 오가는 사람들 예의주시하며, 깜빡이까지 빠지지 않고 똑딱거리며 넣고 있음에도 뇌는 아직 가수면 상태인 모양이다. 


얼른 가서 커피 마셔야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 1년 전만 해도 출근 전 눈뜨자마자 커피를 내려 마시고 회사 가서 또 서너 잔을 마셨더랬다. 그런데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골밀도가 자꾸만 떨어졌다.  유산소 운동도 꾸준히 해보고, 칼슘이며 비타민D를 한 주먹씩 챙겨 먹어도 호전은 고사하고 계속 하향곡선이 그려졌다. 거기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눈두덩이며 눈 밑근육이 열여섯 소녀 심장마냥 시도 때도 없이 떨려 재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찾아보니 이 모든 것이 커피 과다 섭취로 칼슘이며 마그네슘이 쌓이긴커녕 족족 빠져나간 것이 원흉이라 하니...

하는 수 없이 하루 2잔으로 커피를 제한해야 했다. 


그러니, 회사에 출근하고 마시는 첫 커피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출근 후 팀 미팅을 마치고 얼른 사랑하는 그이를 만나러 사무실로 향하려는데 후배가 나를 붙잡았다.


언니 커피 좋아하시죠? 요거 드셔 보셨어요?

하며 헤이즐럿 인스턴트커피 스틱 2개를 내밀었다. 회사 들어온 지 2개월 된 병아리 친구라 업무 익히기도 바쁠 텐데, 용케 내가 커피 좋아하는 것까지 파악한 모양이다. 

이쁘다. 

일 머리가 좋아 한번 가리키면 곧잘 따라 한다는 소리를 옆에서 주워들어 속으로 끄덕끄덕하고 있었는데, 사회생활을 잘해보려는 간절함이 스틱을 수줍게 내민 손과 눈빛에서도 읽혔다. 언제부턴가 나는 절실함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나의 삶 중 참 많은 것에 나도 저리 간절해하며 살아왔었다. 그리하여 지금에서야 조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운명을 맡겼었고, 그래서 지독히 힘들었다. 후배는 나보다 그것을 빨리 깨닫기를 바라면서도, 뭔가를 해보려는 저 아등바등이 기특해 나는 수줍은 커피가 당당해 지도록 극진한 환대를 해 주었다.


와~ 헤이즐럿 향기 좋지 고마워~ 고마워~ 잘 마실게~~


스틱 2개를 커피 포트 옆에 두고 늘 하던 데로 머그잔 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필터를 접어 깔았다. 갈아놓은 원두를 두 스푼 크게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부으려는데 스틱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원두향에 헤이즐럿 향이 좀 더해지면 풍미가 살 것 같아 원두 위에 가루커피 봉지를 하나 뜯어 붓고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런데... 드리퍼 안에 뜨거운 물이 흥건한 채로 아래로 커피가 여과되어 떨어지지가 않았다. 스푼으로 휘휘 저어도 보고 드리퍼를 들어 아래로 기울이고, 아래로 슬쩍슬쩍 쳐봐도 커피는 1초에 한 방울씩 더디게 똑똑 떨어져 내렸다. 아무래도 가루커피가 여과지 구멍을 다 막어버린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야.. 원두랑, 가루랑은 사이가 안 좋구나.. 알았어. 접수했어.


또 하나를 그렇게 배운다. 커피는 30분 넘게 드러퍼를 내린 후에야 맛볼 수 있었다. 헤이즐럿 향이 슬쩍 나다 말고, 원두향도 헤이즐럿향에 기세가 꺾였다. 역시 둘은 맞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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