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 간호사병

by 발돋움

저녁 9시 30분 휴대전화가 급하게 울렸다.

"어, 간호사! 신랑이 알레르기가 갑자기 생겨서 호흡이 힘들고 팔다리가 간지럽데!"

회사 언니의 신랑이자 동료인 직원은 예전부터 보리 알레르기가 있었다. 아마도 보리가 들어있는 식품을 모르고 먹었던 모양이다.

"병원은요?"

"대기시간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저녁에 당번약국도 없다고 하고..."

최근까지 있었던 관내 응급실이 운영되지 않으면서, 한 곳뿐인 야간진료실이 과부하 상태인 모양이었다. 도시에 사는 것이 부러울 게 없는 나이지만, 의료기관의 부재는 유일한 아쉬움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병원은 정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이놈에 직업병. 지인들 전담간호사 병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회사 언니는 단순히 관내 진료실 상황과 자신의 배우자 상태를 브리핑하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한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일말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내게 전화를 했을 텐데... 나의 두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지금 가장 가까운 도시 병원은 1시간 거리. 치료약인 항히스타민제는 회사에 있지만, 스테로이드는 없다. 호흡까지 불편하다면 지금 반드시 스테로이드가 필요하다. 스테로이드를 지금 당장 어디서 구한다...'


그러다 번뜩 집에 있는 구급약통이 생각났다.

"언니 우리 집에 지금 바로 올 수 있겠어요? 저번에 내가 알레르기 생겼을 때 받아놓은 약이 있는데, 급한 데로 이거라도 복용을 하고 호전되면 내일 다시 병원을 찾던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어 지금 바로 갈게!"


생 표고 알레르기 약이 보리 알레르기 환자에게 투여됐다. 알레르기약은 거의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니까. 증상은 금세 호전되기 시작했다. 호흡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가려움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번에도 해결이 됐다. 요런 맛에... 나는 전담간호사 병을 나름 즐기기도 한다.

다음엔 꼭 상비약을 타 놓고 늘 곁에 둘 것을 당부하고, 보리 알레르기 환자는 귀가 조치됐다.


아프고,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제일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나란 건. 생각보다 흐뭇한 일이다.

내 인생의 저금통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한 고마움, 감사함이 쌓일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번엔 맛있는 자두까지 보리 알레르기님이 보내주셨다. 자두가 더 맛있고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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