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했던,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의 일이다.
신입간호사는 정말 머리가 하얗다. 물론 신입이라는 말 그대로 어떤 조직에 처음 들어가게 되면, 모든 일에 언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버퍼링이 걸린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쳇바퀴 돌듯 맞물려 돌아가는 병동 스테이션에서는 매우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인계 중에 병실에서는 CPR이 터지고, 그사이에도 링거를 빼야 할 환자가 오고, 환자 상태가 궁금한 보호자가 오고, 수술실에 갈 환자가 스테이션 앞 보조 침대에 누워있다.
열심히 병실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인계를 겨우 들으며 환자상태에 대해 빽빽하게 메모하지만, 환자를 다 둘러보고 간호사실에 도착할 때쯤 병실 환자 3분의 1이 퇴원하고 새로운 환자가 그 자리에 누워 있다. 인계 노트에서 누굴 빼고 누굴 넣어야 할지도 막막한 한 달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맹장 수술을 위해 17살 여자 환자의 수술 준비를 해야 했다. 수술 준비를 위해서는 수술용 바늘(굵은 18G)로 라인을 잡고,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고, 소변줄을 꽂고, 환자의 금식 상태를 확인한다. 그런데 소변줄에서 사달이 났다. 분명 실습 때는 분명히 보였던 요도가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아 소변줄을 끼우고 소변줄이 방광에서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소변줄 라인 옆으로 생리식염수를 넣어 고정하는 일을 진행하는데 환자가 통증을 호소했다.
"아. 아파요..."
"아. 처음 식염수가 들어가면 묵직하고 느낌이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나의 물음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환자를 데리고 2층 수술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한 30분쯤 지났을까?
전화를 받은 후 심각한 표정을 한 선배 간호사가 나를 처치실 안쪽으로 불렀다. 어리둥절한 나는 처치실로 들어서자마자 선배에게 환자용 차트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너 압빼 환자 소변줄 어디다 꽂았어?!"
"네? 요도에 잘 꽂은 거 같은데..."
"너는 소변줄 꽂고 백에 소변 나오는 것도 확인 안 했어?"
"아.. 방금 화장실을 다녀오셨다고 해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던 선배는 한마디를 하고 처치실을 나갔다.
"너... 그 환자 처녀막 터졌으면 네가 책임져라."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선배에게 차트로 머리를 얻어맞은 치욕감도 중요치가 않았다. 아픈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는 게 간호사라 주저 없이 선택한 직업인데, 내가 누군가에게 커다란 피해를 안져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간호사란 직업이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수술실에서 빨리 발견해 소변줄은 다시 정상적으로 꽂혔고, 하혈과 통증도 없었다. 그 후로 그 환자가 퇴원하기까지 하루에 수십 번은 가본 것 같다. 어디 아픈 곳은 없냐?, 링거는 잘 들어가냐?, 불편한 거 없냐? 불편하면 바로 말씀하시라.
연일 간호사의 태움으로 안타까운 여러 가지 기사를 접하며, 예전 나의 신입간호사 때가 떠올랐다. 산업간호사를 하며 임상간호사만큼 긴박한 일을 자주 겪지는 않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사소한 일이 있을 수가 없기에 늘 긴장된다. 그래도 나는 간호사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업을 행하면서도 베풀 수 있다는 건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