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포기해야 할 것.

by 발돋움

산업간호사일을 17년째 하고 있다. 산업간호사는 임상 간호사와는 많이 다르다. 밀려드는 환자를 처 지하기에 바쁜 게 아니라 환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건강관리를 위해 건강관리실을 오라고 수십 번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도 오지 않는다. 심지어, 내 번호에 직원들은 스팸을 걸기도 한다.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네가 왜 건강관리하라고 난리야!"인 샘이다.

그래도 이놈에 사명감이 뭔지. 나는 싫다는 직원들을 보면 또 잔소리를 한다.

"요즘에는 술 좀 덜 드세요? 담배는 끊었어요? 콜레스테롤이 너무 높던데. 야식 드시면 안 돼요~"


그렇게 열심히 한 나의 행동에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간호사로서 열심히 일하기 위해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들어줬다. 상담만으로도 그들의 증상이 많이 호전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아. 많이 힘드셨겠네요.. 이해합니다."를 했다. 학교 다닐 때 정신간호학 시간에 배운 그대로.

그랬더니, 하루가 멀다 않고 상담받을 사람들이 계속 건강관리실로 왔다. 문제는 남자 직원이 많은 회사 특성상 그런 문제를 호소하는 직원이 남자가 거의 대부분이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어 이야기에 목말랐던 직원들은 나를 과도하게 친한 사람으로 인식했고 급기야 호감을 표현하며 계속 건강관리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라는 성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내가 왜 그렇게 됐을까? 에 대해 되짚어 보며 나의 역사를 거슬러 이유를 찾기 위한 많은 생각을 한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도 있고, 주위에 남자들과 관련된 나쁜 기억들이 있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남자들이 호감을 표현하면 나는 그 사람이 소스라치게 싫어진다. [내가 결혼한 일은 기적이다. 신랑은 좋으니까.] 직장동료 이상으로 대하려 한다는 느낌이 드는 그들에게 '이제 그만 하시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해도 심리적으로 의지가 됐던 사람에게 그 사람들은 멈춤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직장 동료로서 열심히 내 일을 하며 직원들에게 도움을 준 건데 왜 그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행동이나 말투가 직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상담사로서 그릇도 안되는데 상담을 하겠다고 덤빈 나 자신이 잘못이다 란 생각도 들었다. 찢어지고, 화상 당하고, 멍든 상처는 아무렇지 않게 치료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함부로 치료하려 하면 안 된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특히 내가 상담사로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더욱이. 나는 그냥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분들의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질까 하는 생각에 시작한 건데, 그 다음으로 일어날 일들은 내가 감당하기 너무 벅차, 지금부터 직원들과의 심리상담은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꼭 좋은 결과가 오는 게 아니란 건, 살아가면서 숱하게 겪었지만, 준비가 안된 체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예전 셋째 아이 입양을 심사숙고하다 결국 포기한 게 어쩌면 맞는 선택이었나 싶기도 하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줄 만큼 내가 그릇이 큰 사람인지...


내 마음도 치료되지 않은 상태인데 누군가의 마음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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