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해 본인의 고단함을 숨기고 모든 걸 다 내어주고도 더 줄게 없나 늘 고심하는 부모의 모습.
친구 같은 아버지.
그것은 나의 40 평생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제 막 동네 어귀는 알아 놀다 집에 들어올 만한 나이 6살. 그때부터 나는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
한 병에 350원. 3 병값 1050원.
작은 손바닥에 10원 하나 틀리지 않게 쥐어주면 나는 한여름 뙤약볕이건, 엄동설한이건 막걸리를 사러 길을 나섰다. 어른 걸음이면 10분이면 족할 그 길이 그때는 어찌나 길고 지루했던지. 또 그 막걸리는 왜 그리 무거운지 집에 돌아오면 작은 두 손의 빨간 자국은 마치 회초리를 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아버지에게 나는 가기 싫다. 못 간다. 말 한마디를 감히 하지 못했다.
화가 나면 자신의 화에 못 이겨 이성을 잃고 도끼로 망치로 마루 기둥을 마구 내리찍고, 손에 잡히는 물건들은 다 내동댕이 쳐지는 날이 태반이었으며, 수건이나 빗 등이 있던 자리에 없는 날이면 밤사이 가득 찬 요광이나 라면박스에 켜켜이 담긴 고구마 등이 손에 잡히는 데로 마구 내던져져 마루나 누렇게 들뜬 안방 벽지에 내다 꽂혔다. 나에겐 눈조차 마주칠 수 없고, 대화란 꿈도 꿀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대거리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었다.
그 시절 아버지란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도 가장 힘들었던 건, 막걸리를 파는 가게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였다. 무엇을 먹을까?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과자를 고르는 것을 보던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막걸리를 봉지에 넣느라 정신없는 가게 아줌마의 눈을 피해 사탕 하나를 작은 손에 꼭 움켜쥐었다.
나도 내가 마음에 드는 나의 것을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그 사탕은 결국 먹지 못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나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 대로라면 나는 개망나니가 되어 있어야 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관심이 없는 부모 밑에서 가지고 싶으면 훔치고,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되어 있어야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찍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란 것을.
그래도 최소한 기댈 수 있는 무언가는 너무 필요하긴 했던 모양이다. 평소와 같이 온 집이 아수라장이 된 어느 날 새벽. 조용히 어린 남동생을 업고 나서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말수가 없는 아이였다. 당연히 학교 생활에도 문제가 많았다. 대인관계가 원만할 리 없었고, 왕따를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도 혼자 삼키며, 조용히 앉아 공부만 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나에겐 공부밖에 없었고, 또 꼭 대학을 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취업을 하길 원하셨지만, 나는 죽어도 대학을 가고 싶다고 버텼다. 농사일에 막일을 전전하는 아버지와 정미소에서 까대기를 치는 어머니처럼 사는 것이 이 피폐한 가정을 만든 원흉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이어받지 않으려면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술도 못 마시고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정'이란 게 무엇인지. 그런 사랑을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더욱더 그러했다. 이 이쁜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또 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공부가 너무 좋아 연필을 잡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던 아버지는 차남이라 공부를 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해야 했다. 집안의 반대에 그 당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결혼 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아이는 넷이나 있는 상황에 빚보증을 잘 못서는 바람에 온 집안에 빤간 딱지가 붙었고, 그 일로 새벽에 나가 저녁까지 일에 파묻혀 살아도 늘어난 빚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벼랑 끝에서 기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압박해 들어오는 삶의 짓누름에 술에 기대어 몸부림을 치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나날들.
어쩌면 그 시절 네 자식들을 아궁이 앞에 모아 놓고 빨갛게 버무린 돼지고기를 석쇠에 구워 익은 고기 한 점씩 자식들 앞에 놓아주며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그 모습. 잠시 새참을 먹으러 집에 들렀을 때 마루에 누워 숙제하는 내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일하던 낫으로 닳은 연필을 쓱쓱 깎아 놓고 다시 일을 나섰던 모습이 아버지도 원했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불현듯 떠오른 아버지 생각에 퇴근길 친정집으로 들어선다. 거뭇거뭇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로 술에 취해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주검처럼 잠든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직도 그가 사랑스럽다거나, 부모로서 애틋한 감정은 들지 않는다. 다만, 자신도 바라지 않았던 삶을 힘겹게 살아내야 했던 한 인간으로서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워왔을 한 보모로서의 연민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생애 동안 그를 이해해보려 다짐하며 이불을 가져와 말없이 덮어주고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