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인가? 직장동료 C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관리실을 계속 방문했다. 혼자 와서 체지방을 측정하며 지방이 올랐네. 체중이 떨어졌네. 혼잣말을 하고 가고.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방문해 약을 달라고 했다. 또 며칠 전에는 자기가 쓰러졌다며 점심시간에 혈압을 체크하러 건강관리실로 오겠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쓰러질 정도면 바로 병원에 달려가야지 왜 건강관리실로 와서 혈압을 체크하는지.
우리 파트로 발령이 난 이후 C 씨는 내가 주차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주차를 하고, 내 앞에서 일부러 힘들어하며 주저앉고, 하루가 멀다 하며 건강관리실을 찾아와 '다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어지럽다. 속이 안 좋다. 잠이 안 온다.'를 호소했다. 보건관리자로서 아픈 직원을 대해야 하는 것이 나의 업임에도 그 사람에게는 한계를 느꼈다. 그 사람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솟구쳤다.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사람,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눈치가 없다'라고 한다. 그 사람은 눈치 없음의 정석 같았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건강관리실을 왔다. 그리고는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지나 내 옆으로 다가오려고 해서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제지했다.
"거기서 얘기하세요! 가까이 오지 말고!"
나는 분명 불편하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가 않다. 배려 없음과 무례함에 화가 난다.
상황을 지켜보면 회사 언니가 눈치를 체고 바로 대화에 개입했다.
"어! 왜 무슨 일인데?"
어제 건강상 불편했던 이야기를 또 주저리주저리 C는 늘어놓는다. 동료 언니는
"아. 그렇구나. 그럼 어제 약을 먹었네. 사무실을 가자 여기 있어도 할 게 없네." 하며, C를 데리고 나갔다.
점심시간. 나는 동료 언니와 C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 일부러 데리고 나간 거지? 걔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데. 짜증 나게."
"사람이 그리워서 그래. 사람이."
사람이 그립다...
평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며, 애정결핍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람이 그립다는 표현은 나를 또 다른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 그 사람의 행동이 또 다른 이에겐 아주 너그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 어쩌면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상대방, 유독 남자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극도로 그 사람이 싫어질까? 예전부터 나 자신에게 계속 물어 왔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그 답을 찾기로 다짐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왔다. 과거의 어떤 강력한 경험이나 상황이 나를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안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한 것이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나를 힘들게 한 남자는... 아빠뿐이다.
글짓기 상을 받아오면, 그 상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고 기뻐하셨다. 그날은 빠듯한 살림에 힘들어하셨음에도 치킨을 사주시는 유일한 날이었으니까. 가끔 늦잠을 자서 학교에 늦을라 치면 자전거로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다. 나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아빠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천천히 페달을 밟아 가는 등굣길이 참 행복했다. 그런 아빠는 술만 마시면 180도 바뀌었다. 살림을 때려 부시고, 엄마를 때리고, 공부도 못하는 것들한테 돈 쓰는 게 봉사 기름값이라며 책과 문제집을 마당으로 내던졌다. 분노에 차 어찌할 줄을 모르는 아빠와 함께 있는 집은 시안 폭탄을 끌어안은 듯 늘 조마조마했다. 나의 유년시절은 악몽이었다. 눈을 떠도 깨지 않는 악몽. 그 짇은 악몽으로 그전에 행복했던 기억은 흐릿해졌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다.
나와 친해진 남자동료들은 다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으로 더 강력하게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힘들어지는 대인관계, 극도의 예민함, 스트레스. 그것이 편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든 이유였다.
휴.... 심호흡을 하고. 불안감을 내려놓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노력이 지금 나에겐 필요하다.
한 번에 이해될 수는 없다. 한 번에 고칠 수도 없다. 나는 바뀐 자료를 입력했다고 바로 결과가 바뀌는 컴퓨터가 아니니까. 안되면 또 내려놓고, 안되면 또 내려놓고... 그렇게 해서... 이제 나도 좀 편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