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언어.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세계.

by 발돋움

최근 나는 엄마에게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말을 들었다.

"너는 자식이 아니다. 자식도 아닌데 왜 너랑 협의를 해야 되냐?"

딸셋에 아들하나라 어려서 부터 귀하게 큰 남동생은 부모님의 표현대로라면 엄마, 아빠의 유일한 자식이고 나머지 딸들은 자식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소사는 남동생과 만 상의하면 되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든 재산도 당연히 남동생의 것이란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것인냥 이야기하는 남동생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설마설마 했는데, 엄마의 그 한마디는 내게 쐬기를 박았다.

어렵게 살아 오셨다. 아빠는 농사일이며, 집짓는 일을 하셨고, 엄마는 병원식당, 정미소에서 나락가마니 적제일을 하며 우리 네 형제자매를 키우셨다. 화목하진 않았다. 알콜릭인 아빠와 일에 지친 엄마의 잦은 부부싸움과 동네 주민들과의 법정다툼등으로. 집안환경은 늘 불안불안 했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었다. 힘든 노동에 밤마다 다리통증을 호소하는 엄마를 꾸벅꾸벅 졸아가면서도 주물러 드렸고, 학교 졸업 후 바로 간호사일을 하며 부모님께 손벌린 적도 없었으며, 결혼할때도 힘든 부모님 생각에 내가 벌어놓은 돈으로 다 충당했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면서 부터 엄마에겐 자식이 아닌 것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하염없다는 말을 이럴때 쓰는 구나 했다. 눈물이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 내렸다.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다 물려 주고자 하는것은 부모님의 마음이다. 그것은 그들이 일궈놓은 것이니까. 그러나, 그러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딸인 나와 언니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자식도 아닌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외치는 엄마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의 눈물어린 넋두리에 회사 언니들은 이해하란다. 그네들은 다 그렇게 살아왔고, 현 부모님도 아들만이 자식이라고. 이 무슨 조선시대적 '남존여비'인가? 하다가 현실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 한숨이 푹 나왔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됐던 엄마에게서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부모에게 자식으로 인정 받지 못한 나란 존재는 그럼 누구란 말인가?


부모라면 자식들에게 물려줄것이 많아야 좋은 부모인 것이 아니라 힘든 일 있을때, 위로가 필요할때, 아름드리 나무처럼 햇빛도 막아주고, 시원한 그늘도 되어주고, 편한한 휴식처가 되어주어 자녀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는게 부모아니었던가?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줄어들까 자식까지 부정해 버린 부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것일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국제 시장에서 덕수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가족들을 위해 살아내며 나이들어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자신말이 다 맞다'는 고집스런 노인이 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옥동은 자신의 선택으로 힘든 삶을 산 아들 동석에게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낸 그들은 혹여, 그 삶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 하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그래서, 자식이 아니란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자식이 아니란 의미가 아닐 수도 있을까?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엄마를 이해해야할지. 이해 할 수는 있을지... 막막함에 가슴에 돌덩이가 올려진 것 처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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