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코스모스가 때를 모르고 흐드러졌다.
가운데 작은 호수를 끼고 마련된 산책코스를 뛰다 걷다 하며 호수 쪽 비탈면에 만연한 코스모스를 벅찬 숨을 고르며 눈으로 만끽한다. 가을엔 코스모스가 언제부터 공식이 되었을까?
어른들은 다 때가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공부, 연애, 결혼, 2세 계획도 다 그 '때'라는 기준을 가져다 붙여 지금 반드시 해내지 않으면 큰일이 날것처럼 미간을 찌푸려가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도 공부하지 않고 휴대폰만 붙잡고 뒹구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때는 누가 정하는 걸까? 그때가 적당한 시기가 맞긴 한 걸까?
내가 살아온 삶을 잠시 돌아보면 나는 그 때라는 기준에 엄격히 맞춰가며 살아온 것 같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야간자율학습은 빼먹지 않는 학교생활을 했고, 고3보다 더한 대학시절을 보내 간호사가 되었으며, 서른 전에 결혼하고 아들 녀석 둘을 모두 낳아 지금까지 길렀다. 경단녀가 되지 않기 위해 큰아이는 유아약시로 대학병원을 오가며 가림치료 5년, 작은 아이는 틱과 ADHD 진단받고 끊임없이 학교에 불려 다니며 육아를 해오던 중에도 휴직 한번 내지 않고 버텼다.
그럼 나는 그때를 잘 선택하고 잘 버티고, 잘 이겨가며 완벽한 삶을 살아온 걸까?
글쎄.
야자 한 번 빼먹지 않고 미친 듯 공부만 했던 건 나 아니면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절체절명의 절실함에서였고, 서른 전에 빠른 결혼을 한건 결혼만이 집을 완벽하게 탈출할 있는 출구였기 때문에 선택된 계획이었으며, 두 아이를 키우며 밤잠 못 자고 회사 눈치 봐가며 버틴 결과로 아이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짜증 내고, 그 후로 또 미친 사람처럼 자책하는 밤을 매일 보내게 되는 삶을 근근이 버텨 온 결과였다.
좀. 그러니까 좀. 놔도 되는데.
톱니바퀴 하나 어긋나 삐걱거리면 죽는 줄 알고.
뭘 그리 아등바등. 그러고 살았을까....
온도, 바람, 습도가 적절할 즈음.
시기고 때고 다 집어치우고 스스로 알아서 꽃망울을 틔우고 겁 없이 흐드러진 코스코스를 보며
다시 한번
딱 정해진 이치며, 규칙,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서 그 뿌리까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