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30분.
둘째가 매운 떡볶이를 먹고 탈이 났는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요즘 밤까지 이어지는 폭염에 방문을 모두 열어 놓고 생활하면서 한밤 중 가족끼리 가장 많이 공유하게 된 건 소리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태풍이며 번개가 쳐도 통잠을 자는 나인데 여름엔 그래서 예외다. 여름밤의 소리는 유독 크고 선명하게 들린다.
'그러게 매운 떡볶이 자주 먹으면 속이 망가진다고 했지?' 통잠을 깨운 심통을 둘째에게 부리려다 그만두었다. 소리에 잠이 깬 나보다 배가 아파 그리된 둘째가 핀잔까지 들으면 불편한 속에다 마음까지 더 힘들어질 테니.
벽에 부착된 LED시계가 3시 30분을 표시할 때까지 잠이 들기는커녕 더 말똥말똥해지자 부스스 일어나 베란다 앞에 섰다.
새벽은 참 매력적이다. 오래 눈에 담으려 일부러 정지한 영화 장면 같다. 가로등의 반짝임은 검은 배경 덕분에 보석처럼 빛나고, 줄지어 선 자동차는 나란히 잘 정돈된 조형물처럼 가지런하다. 멀리 아파트 뒤로 내려앉은 안개로 눈앞에 모든 광경이 몽환적이다. 거기에 더하여 여름밤에 맞춤한 은은한 온도, 부드러운 바람, 매미와 귀뚜라미 울음소리의 낮은 콜라보, 상쾌한 공기에 섞인 흙냄새. 간유리에 비친 듯 구름사이로 슬쩍슬쩍 스치는 달까지. 가끔 멀리 도로를 스치는 자동차가 이질적이기까지 한 새벽. 둘째의 매운 떡볶이 덕분에 좋은 책 한 권에 버금가는 감동의 호사를 이 새벽 혼자 고스란히 마음속에 담아본다.
유난히 새로움과 변화를 경계하며 살아왔다. 새로움은 내 영역의 확장을 의미하고, 확장은 나의 노출과 늘어난 대인관계를 의미했다. 대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다는 것은 나에게 극심한 피로였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보이기 싫은 것들이 눈에 띄었을 때 그것들을 이해시켜 주길 바라는 그들의 눈빛은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루틴대로 살아왔었다. 보던 사람, 먹던 음식, 입던 옷, 가던 장소만 오가며 상자 속 삶을 스스로 자처해 살아왔던 나는 정해진 시간에 자고 예정된 시간에 일어났다. 그런데 정해진 곳으로 가면 정해진 일만 일어나지만 다른 길로 돌아가면 예상치 못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아 가고 있다. 루틴대로 통잠을 자기만 했다면 보지 못했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새벽처럼.
이런 게 유연해진다라고 하는 것 같다. 보이고 싶지 않아 덮어 두면 덮어 둘수록 곪고 진물 이 흐르던 상처가 어느 순간 참을 만해지고, 흔적만 남기며 서서히 치유하는 힘.
그러면서 나는 예전보다 참 많이 편안해졌다.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화가 덜나고, 짜증이 줄었다.
많이 편안해졌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