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출근길.

by 발돋움

아침부터 비가 온다.

어제는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오늘 아침은 바람이 잔잔해지고, 비가 내려 빗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어 좋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10분쯤 시간이 남아 거실 바닥에 커피를 들고 주저앉았다. 창문 너머 빗소리가 들리고, 화분들은 올망졸망 푸르르고...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고, 가부좌를 틀고, 양손은 무릎 위로, 등은 곧게 펴고, 눈을 스르르 감아 본다.

귓가에 들리는 빗소리만을 집중하며...

눈을 떴을 때 5분이 흘러 있었다. 처음 하는 명상이고, 출근시간이 다 되어 긴 시간 명상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 하루는 좀 더 느릿느릿 보내고 싶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출근길을 나선다.

끼어드는 차는 다 양보하고, 느림보 앞차는 기꺼이 이해하며 출근하는 길 잠시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했다.

횡단보도 앞 어르신 두 분이 보인다. 부부로 보이는 두 어르신은 한분은 곧게 서고 한분은 허리가 불편하신지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서계셨다.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자 곧게 서계시던 어르신은 등이 굽은 어르신의 손을 꼭 잡고 우산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초록불이 깜빡여도 걸음이 느린 어르신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그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옆에 있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편안히 걸으라는 듯 상대방 보폭에 맞춰 걸어가는 두 어르신을 보며, 나도 단박에 저렇게 늙어 가고 싶어 졌다. 늙어간다는 당연하지만 슬픈 현실 앞에서 나를 저만큼 이해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너무 든든할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신랑을 이해하고 사랑해보자 마음먹어본다. 신호가 바뀌고 저만치 천천히 걸어가는 노 부부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참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었다.


느릿느릿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향한다.

걸으며 불어오는 비 묻은 바람도 느끼고, 강한 햇볕에 타버린 잎들 사이 새롭게 돋아난 푸른 잎도 바라봐 주고, 아스팔트 틈에서 핀 작은 풀꽃도 감상하며 출근했다.

그렇게 천천히 출근하며 평소 출근 시간에 5분이 더해졌다. 더해진 5분 동안 16년을 근무하며 바쁘게 출퇴근했던 길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느꼈다. 마음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느림의 미학을 한껏 느끼며 시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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