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잔

by 발돋움

나는 술을 마시고 나면 죄책감이 들었었다.

아빠의 넘치는 술사랑으로 집안에 남아나는 살림살이가 없었고, 상처받지 않은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랑이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 호감이 많이 갔다는 생각을 나는 부정하지 못한다. 그만큼 술이 싫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술을 즐긴다.

그중에서도 막걸리 한잔의 맛은 그야말로 하루의 스트레스와 시름을 달래준다. 막걸리의 효능은 보약은 저리 가라고 할 만큼 무궁무진하다. 변비 예방, 다이어트, 피부미용, 면역력 증가, 통풍 예방, 항암효과 까지... 이건 뭐, 막걸리를 즐기지 않은 이에게 '왜 아직 안 드세요?'라고 물을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막걸리 늘 좋아하는 건 효능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가 많이 길고 어깨가 무거운 날.

나는 저녁 식탁에 막걸리 한잔을 준비한다. 그리곤 주방창이 잘 보이는 식탁 자리에 앉는다. 주방 창에 비치는 풍경은 계절, 날씨,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화가 걸린다. 오늘은 비 온 뒤 물안개가 적절히 조화된 산이 걸렸다. 거기에 적절히 바람까지 불어 주니 막걸리 한잔이 어떤 명주가 부럽지 않다.


이래서... 아빠는 술이 좋았던 모양이다.

힘든 하루에 술이 나에게 위안이 되는 걸 깨닫고 나서야 나는 그가 조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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