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피곤하고, 제법 많은 돈이 들고, 가보지 않은 곳이므로 자동차사고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범죄 위험성이 높으며, 익숙하지 않은 곳이므로 불편하다.
여행을 즐기며 힐링의 근원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여행에 대한 사견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지금까지 그러했다. 어렸을 때 먹고살기 바쁜 부모님 밑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성인이 되어선 간호사를 하며 교대근무에 찌들어 늘 피곤함에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바로 극심한 입덧을 동반한 임신을 하는 바람에 내 인생에 여행이 큰 의미로 자리 잡을 만한 기회가 없었다.
나에게는 여행이 그런 의미이나, 아이들에게 여행의 의미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도 여행 좀 가면 안돼 엄마?"
코로나로 수학여행도 소풍도 못 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번 방학 땐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그래 가자!"
당일 코스로 부산 롯데월드와 저녁식사는 호텔 뷔페에서 먹고 오는 걸로 정했다.
부산 롯데월드는 규모가 아담했다. 익사이팅을 즐기는 첫째와 남편이 탈만한 놀이기구는 자이언트 윙과 자이언트 디거 정도... 겁 많은 둘째와 모험심이 1도 없는 나는 스완 레이커만 몇 번을 탔다.
그러다 용기가 났는지 둘째가 자이언트 윙을 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자식이 원한다면... 엄마는 할 수 있다!
"잘할 수 있지? 겁나도 꾹 참고 한번 해보자 대단하네~ 이제 무서운 놀이기구도 타고~"
자이언트 윙은 동그랗게 좌석이 배치된 휠의 중심이 돌아가며 바이킹처럼 180도를 왔다 갔다 하는 놀이기구인데, 아... 자신이 없으면 타지 말기를 권한다. 회전이 빨리 끝나지도 않고, 180도 이상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정말 토할 뻔했다. 다시는 안타는 걸로 굳게 마음먹었다. 크게 마음먹은 둘째는 오히려 아무렇지가 않다. 역시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다.
뒤집히는 속을 잠재우느라 나는 더 이상 놀이기구를 탈 수없음을 선언하고 신랑과 아이들이 다른 놀이기구를 마음껏 타고 오라고 얘기한 후 놀이공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교복을 커플로 맞춰 대여해 입은 연인들, 크롭티셔츠를 과감하게 입은 20대 여성들, 어린아이를 안고 온 부부들. 저마다 놀이공원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약속 없이 모여 같은 공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였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이 말기 암병동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앞둔 그늘진 표정에 암울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고, 우르라이나의 전쟁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면 모든 이들이 공포에 질려 있고 나 또한 전시상황을 경험할 텐데, 지금 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하는 모습이니, 덩달아 나 또한 행복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실로 나 또한 행복했다. 물이 튀어 오르는 놀이기구에서 물을 사정없이 뒤집어쓰고, 태양볕이 뜨거워 그늘만 쫓아다니면서도 아이들과 신랑과 함께 이 공간에 이렇게 이곳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이런 게 여행이구나 싶다. 계획한 대로 목적한 대로 착착 진행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공간 말고 다른 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즐기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정확한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일들이 다 여행의 묘미인 것을.
까맣게 그을리고 더위에 헉헉 거리면서도 놀이기구를 타겠다고 다시 줄로 뛰어가는 아이를 보며, 오늘 추억 하나 제대로 쌓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