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산행

소소한 행복.

by 발돋움

토, 일 중 한 번은 등산을 간다.

다녀와야 이번 주를 말끔하게 마무리한 느낌이랄까? 밀린 숙제를 모두 해치운 후련함이라고 할까? 고런 느낌이 드는 신랑과 나이다. 신랑은 주중에 한번 축구를 하고, 나도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지만 제대로 된 유산소 운동은 등산만 한 게 없는지라 비나 눈, 극한의 추위가 아니면 나는 신랑과 산에 오른다.


일요일은 신랑이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토요일로 등산 날을 정했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방문하신다고 연락이 왔다. 손주를 2주 이상 안 보면 눈에 밟히시는 분이라 평소에 늘 영상통화를 하시고도 한 번씩 보러 오신다. 여름 휴일 점심으로 비빔국수 만한 게 있을까? 상추, 양배추, 사과, 부추를 고명으로 준비하고, 비빔장을 만들고, 국수를 알맞게 삶아내 시원한 물에 씻어 다 함께 버무린다. 든든한 점심을 드시고, 손주들을 눈에 가득 담은 어머니는 저녁 약속이 있으시다고 6시쯤 집을 나서셨다.


"지금이라도 가볼까? 해가 많이 길어졌으니까"

"그러자 그럼."


등산 채비를 하고, 차를 타고 도착한 등산로 초입에서의 시간이 6시 53분이었다.

아직 해는 있었지만,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 1시간 30분을 계산하면 8시 반쯤이 하산 시간이었다.

올라가는 내내 걱정이 됐다. 깜깜해지면 어쩌나 하고...

무서움도 많이 타고, 조그만 것에도 잘 놀라고, 모험심이라곤 1도 없어 '아는 길도 무서우면 안 간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사는 나인데, 괜히 등산을 가자고 했나 산을 오르면서 벌써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깜깜해질 것 같은데, 오늘은 꼭대기까지 오르지 말고, 약수터까지만 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다 하고 가지 왜?"

"깜깜해지면 나 무서운데..."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등산로 주위 환경의 명도가 급격히 내려앉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신랑의 말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신랑이 있어도 무서웠다. 꼭대기와 약수터를 가르는 이정표에서 신랑은 끝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냥 약수터까지만 가자는 말을 그렇게 바랐 것만... 나는 포기하고 꼭대기로 향했다. 대신 발걸음은 뛰는 심장박동만큼이나 미친 듯이 빨라졌다.


"페이스 조절해. 많이 안 깜깜하잖아. 천천히 가."

헉헉 거리며 산을 오르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신랑은 내 뒤를 따르며 이야기했지만, 나의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꼭대기에 올라 물을 마시고, 쉬지 않고, 다시 하산을 했다.

이제 주위가 제법 깜깜해졌다. 하산하며 내딛는 돌이 겨우 식별이 되는 정도였다. 더듬더듬 산 아래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의 발 앞으로 불빛이 비춰 졌다. 내가 왼쪽으로 갈 때는 미리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갈 때는 미리 오른쪽으로 불빛은 한 발 앞서 갔다. 그 불빛 하나로 나는 갑자기 기분이 평온해졌다. 불안함에 미친 듯이 뛰어대던 심장박동도 점점 늦춰졌다. 손으로는 휴대전화 라이트로 내 발 앞을 비추고, 자신은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며 내려오고 있는 신랑이 누구보다 든든한 보디가드 같았다. 내 앞을 비추는 불빛은 그 어떤 안심하란 이야기보다 더욱더 나를 안정시켰고, 보호받는 느낌을 들게 했다. 나도 모르게 승천하는 입꼬리에 기분은 이미 날아갈 것 같았다. 신랑이 옆에 있으면 야간 산행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 자기, 나 다칠까 봐 불 비춰주는 거양?"

나의 애교 섞인 코맹맹이 물음에 신랑이 한 대답으로 나는 깜깜한 산이 떠나갈 듯 웃었다.


"너 다치면 내가 고생하니까 해주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

100% 경상도 사나이다. 투박한테 진국인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이 사람.

나의 초스피드 산행으로 1시간 반 코스가 1시간으로 끝났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이 충만한 산행이었다.

행복은 참 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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