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힘

브럿치를 만나고 변화된 삶

by 발돋움

편견 덩어리.

편견 덩어리 었다. 나는.

그랬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며 조금씩 변해갔다.


둘째가 처음 틱을 진단받았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떡하면 좋을까. 이일을...' 눈물로 시간을 보내던 그때.

나는 누구 걱정에 눈물이 났을까?

장애를 혹시 가지고 살아갈지 모르는 아이 걱정이 컸을까? 아니면 그런 아이의 부모로 그런 상황을 평생 지켜보고 살아갈지도 모르는 나를 걱정했던 것일까?

나는 선자라 단언할 수 없다.


수영장에 갔을 때 장애인 수영 수업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수영장 풀에 입수하는 순간부터 나의 몸은 경직됐다. 규칙을 잘 지킨다거나, 일관될 수 없는 그들의 특징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그들 곁에 가는 게 겁이 나 수영시간 1시간은커녕 20분도 채우지 못하고 바삐 수영장을 빠져나왔다.


어릴 때 바로 옆집에 살던 남자아이에게도 그랬다.

그 아이와 우리 집 아이들의 차이점은 그저 엄마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오는 게 꺼려졌다. 늘 술에 취해있는 사촌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로부터 내팽개쳐지고, 직장도 잘 구해지지 않아 마음 둘 곳이 없어 늘 술에 취해 우리 집을 찾아오곤 하던 오빠에게도 나는 우리 집에 오지 말 것을 단호히 말했다.


내가 생각한 모든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그들과의 만남은 나는 너무나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 이어져 지금은 남동생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남동생도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기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했기에 나는 분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었나?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기준이 바르긴 한 것인가?'

내가 살아온 그 작고 협소한 삶에서 터득한 기준에 세상 모든 사람을 맞춰 '맞다, 아니다'로 판단하는 내가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는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나를 계속 뒤돌아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브런치에 일흔 여편의 글을 올리며 취한 가장 큰 혜택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다 잠시 내려놓고, 남동생에게 장문의 톡을 보냈다.

지금 나의 생각과, 너를 이해함과, 분쟁의 무의미함에 대한 내용을 담아 담담하게.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창문에서 날아든 산뜻한 가을바람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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