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세기 이모 대신. 수세미.

by 발돋움

요즘 뜨는 삼대 이모.

식세기 이모, 건조기 이모, 로봇 청소기 이모...

여자의 인생은 세 번 바뀐다고 했던가. 태어나서, 결혼하고 나서, 그리고 삼대 이모가 들어온 이후.

나는 세분 이모님 중 건조기 이모님은 모셔 왔다. 2018년 집을 넓혀 이사 오면서, 다른 건 몰라도 건조기는 꼭 사고 만다는 일념 하에 좁아터진 뒷베란다를 쥐어짜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모셨다.


신세계는 분명했다. 겨울이면 건조기가 사람보다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거실이 너무 깔끔하고 쾌적해졌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먼지도 덜해졌고, 무엇보다 아이들 체육복도 오늘 저녁에 빨아 당장 내일 입힐 수 있다는 기적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옷 사이즈가 열풍 건조 때문에 줄고, 면 티셔츠는 꾸깃꾸깃해져서 정리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펴서 게야 하고, 면바지, 청바지, 니트 등은 원래대로 자연건조를 해야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조기는 정말 사랑스럽다.


건조기 이모에게 푹 빠진 나는 나머지 이모들에게도 슬슬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미 식세기와 로봇청소기 이모를 모신 집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 또한 신세계가 다름없긴 했다.

식세기 이모는 밥 먹고 슬슬 찌꺼기만 씻어내고 넣기만 하면 깔끔하게 소독까지 해주고, 늘 식기 건조대로 복잡했던 싱크대도 말끔하게 정리되게 해 주신다. 거기다 로봇 청소기 이모는 또 어떻고.

어찌나, 묵묵히 청소를 열심히 하시는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구역 설정만 해놓으면 성실하게 군말 없이 물걸레 청소까지 뚝딱 해줘서, 우리 가족이 원래 머리카락이 빠지는 사람들이었나?를 생각하게 만든단다.

거기다 계속 움직이는 모습이 애완동물처럼 귀여워 한번 들여놓은 로봇청소기는 새로 사기보다 고쳐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어쩌다 높다가 턱 때문에 넘어져 바둥거리기라도 하면.

"어유, 넘어졌어요~ 다시 일으켜 세워줄게요~"라고 할 정도.


이쯤이면, '왜 아직 안사고 있는 거지?'라고 반문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는 식세기 이모와 로봇청소기 이모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것마저 이모들에게 맡겨 버리면, 집안에서 움직이는 운동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어제 뉴스에서 뱀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보도에 등산도 살짝 무서운데, 집에서 하는 소일거리 마저 놓아버리면, 하루 종일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만 같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설거지를 하기 위해 요즘 수세미를 뜬다. 유튜브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봐서 그만 좀 봤으면 싶다가도 유용한 콘텐츠가 너무 많아, 나도 가끔 보곤 한다. 처음 미싱을 배울 때도, 코바늘로 수세미를 뜰 때도 선생님이 참 잘 가르쳐 주신다. 하나하나, 코를 올리고 빼고 하며, 수세미가 완성될 때마다 재미있고, 나름 뿌듯하다. 거품도 잘나고, 설거지도 잘되고, 막 이쁘고, 멋진 모양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내가 만든 작품으로 설거지하는 기분도 참 괜찮다. 언제 식세기 이모가 우리 집에 올진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열심히 수세미를 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