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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05. 2022

모든 일하는 임산부에게 #6주차

 병원을 다녀온 뒤 불안함을 더욱 크게 느낀다. 남편은 걱정하지 말고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데 마음을 그렇게 먹는 것이 쉽지가 않다.

 오래 앉아서 일하는 내 일이 아이에게 방해가 될까, 임신 전 하겠다고 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연수가 방해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든다. 일을 하다 보면 울컥울컥 짜증이 밀려와 얼른 모성보호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학교에 말하는 것도, 이 시간을 쓰는 것도 왠지 눈치가 보인다. 비담임에 비교과라서 편하게 쓴다는 뒷말을 듣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너무 싫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많이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항상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걱정들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알지만 여전히 눈치 보고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봐 걱정한다. 설사 나의 이야기를 한들 그게 어떻다고 그렇게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혼자 일하는 별실을 쓰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을 했다. 회사에 돌아가는 상황도 잘 모르고 내가 하는 일을 잘 티가 나지 않아서 내가 잘하고 있나 끊임없이 고민하며 오히려 더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안정적이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이곳도 작은 사회이므로 그렇게 마음먹는 것이 나의 성격상 잘 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설사 뭐라 하더라도 그게 뭐 어떤가 하는 당당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누군가 회사 생활은 눈치를 보지 않고 미친놈처럼 행동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어도 나 같은 소심한 사람에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일을 할 때도 항상 배려하고 물어보는 타입인데 임신을 해서 배려해달라고 말하려고 하니.. 해야 한다는 것 알고 아기를 생각해야 하는 것 아는데 조퇴를 너무 자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눈치가 보인다.


 조퇴. 연차를 잘 쓰지 않는 직장에서 조퇴는 이상하게 눈치가 보인다. 내가 없으면 이 실의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체자 없이 그냥 닫아도 되는지... 고민이다. 이때까지는 항상 운이 좋아서 내가 출장을 가거나 조퇴를 해도 그렇게 터치를 크게 하는 관리자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는 눈치를 많이 주는 분도 있다고 하니 나는 운이 좋았다. 그렇지만 혼자 있으니 눈치가 보인다. 누군가 실을 같이 쓰는 분이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써~'라는 말을 해주셨다면 더욱더 마음을 굳게 먹었을 텐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 임신 확인증을 받지 못해서, 피고임이 있는 것에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았다. 앉아있는 것도 스트레스도 내가 만나게 되는 학생들도 괜히 조심스럽고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조심스럽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실에 있는 소파에 가서 누웠다. 누워서 1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피고임이 있을 때는 눕는 것이 최고라고 하는데 나는 아기한테 계속 누워 있어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어떤 사람의 글을 봤는데 피고임이 아기집을 밀어낼 수도 있다고 해서 무섭다. 일을 하다 보면 계속 앉아있거나 서 있어야 하고 말을 많이 하면 배가 아프다. 최대한 마음을 긴장을 안 하고 일을 하려고 하는데 눈치를 많이 보는 나 같은 사람은 일을 할 때도 항상 긴장하면서 일이 안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하기 때문에 그것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데 다른 부서와 협의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왜 이 일을 이렇게 진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하면서 좀 더 보강된 자료를 들고 직접 찾아가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 일을 잘 진행되었지만 그다음 단계가 문제다. 주문을 한 업체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다다음주에 당장 전시물품을 내려가야 하는데 못 갈까 봐 걱정이 났다. 이걸 하려고 8월부터 열심히 달렸는데 결과를 제출하지 못한다니.. 스트레스가 엄청나고 뭔가 가슴이 답답한 것 같았다.

 양치를 하면서 속으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6주 차에 들어오면서 나는 입덧도 없고 아무 증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5주 차부터 무증상에 대한 글을 많이 검색하기는 했지만 정말 입덧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닌까 오히려 더 불안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이 찌는 것 같고 배가 더부룩했다. 가스가 계속 차고 화장실을 시원하게 가지 못해 불편함이 따라왔다. 많이 안 먹는데 살이 찌는 기이한 현상에 저녁마다 참아보려고 하는데 배가 고프면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무언가를 먹고 많다. 그렇게 따지면 저녁에 사실 너무 많이 먹는다. 요즘 임산부들은 많이 먹지 않고 체중 조절을 한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실패할 것 같다. 

 아무 증상이 없는 나에게도 증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짜증이다. 원래 예민한 성격이라서 남편에게 미안했는데 더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모든 상황들이 싫고 짜증 났다. 일을 예민하게 하는 것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좋은 것을 먹지 않는 것도 다 미안하고 짜증 나고 뭐든 상황이 싫었다.

 오늘은 갑자기 너무나 집에 가고 싶었는데 나 혼자 또다시 눈치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갑자기 너무 병원에 가보고 싶다. 병원에 다녀온 지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병원에 가고 싶다니...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사진을 다시 한번 본다.

 초음파 사진을 곰곰이 보면서 피고임과 아기집을 관찰한다. 아기집 주변에는 하얀색 띠가 있고 피고임은 별로 없다. 아기집과 피고임 크기가 비슷하다. 왜 의사 선생님이 나의 피고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 나에게 임신 확인서를 주지 않고 별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이 든다.

 '혹시, 유산될 아이라서 아무 말도 안 한 거 아닐까?'

 '혹시, 어차피 될 거라서 그냥 임신확인서 안 준거 아닐까?'

 온갖 불안이 내 마음을 덮치고 아까 한 수업에서 계속 서 있어서 진을 뺀 것도 너무 힘이 든다. 남편에게 연락을 하면서 오늘 병원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너무나 가서 확인을 하고 싶다. 나의 아이가 잘 있는지...

 다음 주 목요일에 예정되어 있는 병원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며 질 초음파를 자주 하는 게 좋지 못하고, 아직 다녀온 지 4일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주말에 쉬면 되닌까.. 그냥 마음을 다 잡자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예상치 못하게 밀려오는 감정에, 미안함에 뭔가 눈물이 난다. 호르몬 때문인가 보다. 어제저녁에도 갑자기 뭔가 감동적인 글을 보면서 1초 만에 바로 눈물을 흘렸다. 내 분을 주체할 수가 없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괜히 남편의 행동에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난다.

 아기가 이런 환경에서도 예민하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원해본다. 나는 일하는 임신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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