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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Nov 11. 2023

원하는 것

1

평범한 게 지겹다. 더럽게 지겹다. 평범하게 선량한 지인 A는 단명한 유명인의 운명을 두고 낄낄거리고, A는 유명인이 아니라서, 욕은 그가 아니라 내가 먹게 된다. 그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하는 내 탓. 어째서 선량함은 성품의 유능이 아니라 모든 게 그저 그런 인간의 포장재가 되었나. 평범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사람들을 감싸는 비닐같이. 이곳의 평범함과 서로 간의 다정함이 지겨워. 유명인들의 냉혹한 비즈니스 월드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2

캐럴라인 냅: “여자로 자랄 때는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은 허리가 휘도록 지면서도 매력적인데 따르는 즐거움은 거의 누리지 못한다”- ≪명랑한 은둔자≫ 중에서.

조앤 디디온은 영화배우 존 웨인의 “강렬한 성적 권위”에 대해 언급한다.     


3

네 사랑은 나를 미치게 해. 가사가 노래에는 희극으로,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반복되고. 세상에 개방적이며 치명적인 어른들이 아무리 많아도 현실에서 무엇을 좋아한다, 원한다고 한마디 하는 건 너무 어렵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그랬다. 어떤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학생 때도 힘들었고 심지어는 지금도 쉽지는 않다. 음악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해외진출을 한 연예인이 늘었다고 하더라도 애국심에 심취하지 않는 이상, 나를 알지도 못할 유명인에게 ‘과몰입’하는 것은 ‘오타쿠’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식이다. 왜 알지도 못할 사람한테 과몰입을 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른다. 그저 마음과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게 아깝지 않느냐는 근거를 드는데, 사실 그 사람들도 삶에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낭비하기는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낭비의 방향. 그들은 (일정 수의 젊은 남자들도 포함되겠지만 주로) 젊은 여자들이 연예인이나 뮤지컬 출연진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시간과 돈과 감정을 낭비해주길 바란다. 자기들에게 관심을 쏟느라 다른 것을 안 원하길 바란다. 빌어먹을 인간들.     


4

빌어먹을 인간들과 붙어먹으려면 미치기도 단단히 미쳐야 할 것이다. 정서적인 관계, 특히 연애 같은 경우에, 상대에게 봉건적 충성심을 요구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마치 본인이 중세의 영주라도 되는 양. 본인이 마뜩잖아하는 친구는 안 만나야 하며, 언제라도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서(그 잘난 머리를 굴려서 애인이 이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 건가? 예를 들면 헛소리를 하나, 안 하나 같은.) 핸드폰을 넘겨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동할 때마다 일정을 보고하고, 일정 시기가 되면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스킨십에 대한 “합리적 합의”를 놓고 노력을 해야 하겠지. (그냥 안 내켜서 하기 싫다는 비합리적인 이유로는 납득이 안 되는 건지?) 육체적 관계를 빼놓고 이렇듯 하나도 진보적인 구석이랄 게 없는 연애는 시작과 끝 역시 굉장히 폐쇄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별 후에 몇 달 이상의 자숙기간을 거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곳에서 엄청난 문란함이자 부도덕으로 취급된다. 적어도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렇다.      


5

정신과에 가려면 돈이 필요해. 안 맞는 사람들이랑 거리를 두려면 명예와 위치가 필요해. 

그러면 지인 A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너의 욕심이야.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의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권력을 거머쥐어야 해요. 

하지만 A와 친구들은 수십 년 경력의 활동가들을 무시한다. 

그야 나와 A와 친구들은 모두 ‘젊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갑자기 너무 늙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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