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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Sep 14. 2023

잡지의 세계

내가 처음으로 남성지를 접했을 때는 ‘최애’ 아이돌 그룹이 A지에 실렸을 때다. 대충 십여 년 전에는 남성지에 남자 아이돌이 나오는 분위기가 아니었는지, A지의 표지는 “A에 X가 나오다니!” 하는 식으로 과장 섞인 캐치프레이즈가 쓰여 있다. X의 열렬한 팬인 나는 슈트 입은 오빠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학교를 마치자마자 서점에 가서 당일 입고된 A지를 구입했다. 과연 최애들의 슈트 핏은 대단했다. A지는 바람직하게도 전면에 한 명씩 크게 배치해 주었다. 역시 좋은 건 크게. 


남성지에 남자 아이돌이 나와서 불만을 가진 남성 독자들이 있든지 말든지, (그 후폭풍을 A지의 편집 후기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 나는 그 뒤로도 A지를 종종 봤다. 몇 번은 구입도 했을 것이고, 대부분은 도서관 연속간행물실에 앉아서 잡지를 넘기며 머리를 식혔을 것이다. 하교할 때 근처 남고생들을 보면 피해 갔던 그때의 나는, A지가 예상과는 다르게 헐벗은 여자들과 더티 토크가 난무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소위 여성지라 하는 (여성학 학술잡지가 아니다) 잡지의 황색 저널리즘이 A지엔 없었던 것이다. A지의 에디터들은 표지에 ‘섹스 테크닉’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 자리를 ‘소니의 미덕’이 메웠다.


A지도 자신의 변별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에 속했다. A지는 글로벌 남성 잡지의 한국 지부였는데, 편집장은 본사에서 한국 A지를 힐난하는 것을 종종 자랑삼았다. 한국 A지에는 글이 너무 많아. 여자도 잘 안 나와. A는 그런 학술적인 잡지가 아니야. 그렇게 말했다고. 나는 (같은 이유에서) 반대로 A지를 경외했다. 《창작과 비평》을 어려워하지만 “여성〇〇”류와 번역 투의 잡지는 손대기도 싫었을 때, A는 그 사이에서 품위 있게 존재했으니까. 몇 천만 원짜리 시계와 몇 억 짜리 차에 대해서 길게 늘어놓는 걸 멍하니 들여다보다가도, ‘결혼 권하는 사회’의 문제라든지 중견 출판사가 새로 내놓은 세계문학전집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걸 보면 눈이 뜨였다. 물론 좀 난해했지만 그건 게임을 클리어할 때의 어려움과 비슷한 것이라 도전해서 소화하고 재미를 느낄 만했다. 게임도 그렇지만 그 정도의 난도는 없던 충성심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런 내가 A지에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단 기사로라도 섹스 토크가 나오는 일은 A에도 있어서가 아니고, 담배 광고 면이 빳빳한 종이에 인쇄돼서 나와서도 아니었다. A지도 피하기 어렵다는 ‘허세 섞인 잡지 말투’ 때문도 아니었다. A지의 에디터들은 타사에 비해 자기 주장이 있고 문체도 정갈한 편이니까. 그렇지만 A지의 분석과 인용에는 근거가 없었다. 예를 들면 A의 ‘크리티즘’은 이렇다. 언젠가 모 대학교수는 사석에서 “한국문학이 비닐장판 무늬를 그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핍진성이랍시고 현실의 남루함에만 천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P는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문학의 신성이다… 이런 식으로. 여기서 드는 의문이 몇 개 있다. 


1. 한국문학이 비닐장판 무늬를 그리고 있다는 근거는? 

2. 한국문학이 비닐장판 무늬를 그려서는 안 되는 이유는? 

3. 한국문학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 모 교수의 사적 발언이 갖게 되는 권위는? 


3까지 가게 되면 좀 우스워진다. 그 사석에서의 말은 ‘교수’의 것이 아니면 대단한 의미가 없어지니까. 어쩌면 시계가 아니라 ‘롤렉스’여야 하는 잡지의 세계와도 마찬가지 아니겠냐며 조소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A지는 왜 롤렉스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해 왔다. 초고화질 화보와 브랜드의 역사 요약과 감각적인 사용후기로서. 그러니 이 비평은 딱히 잡지스러운 방식도 아닌 셈이다.  


사실 그 이후로도 A지의 온라인 홈페이지와 블로그 따위를 들락거렸다. 그동안 A지는 전국 일간지처럼 실물 잡지의 판매 부수가 줄고 콘텐츠 수익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디지털은 돼지털”이라는 식으로 (그 올드한 유머에 나를 경악시키면서) 자조하기도 했으며, 뭐,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읽을거리들을 올리면서 제법 눈길을 끌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도 A지와 인터뷰했고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아직도 어렸을 때의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엔 A지 에디터들의 필력은 일정 수준 이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쁘장한 남자 아이돌들이 허구한 날 나와서 나른해 보이는 화보를 찍었다. 내가 처음 A지를 구입한 그때와는 다르게, A지의 충성스러운 독자들은 남자 아이돌들이 남성성을 침탈하는 일에 해탈한 것도 같다. 하기야,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아이돌들은 문화산업의 첨병들 아닌가. 결국 성과가 나오면 장땡인 셈이다. 모두가 적당히 기분이 좋으니까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된다. A지는 술자리 방담 인용을 잊어도 되고 처음으로 아이돌을 인터뷰한 긴장감에 사로잡힌 편집 후기를 아카이브에서 지워도 된다. 여성지들이 ‘내 남자를 만족시키는 섹스 테크닉’을 올렸던 걸 잊고 (다분히 수상쩍게) 영화 <캐롤>과 《82년생 김지영》에 열광했던 것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고 잡지의 계절은 어떤 곳에서보다 빨리 흐르니까. 그저 그렇게 흘러가면 잊혀진다. 반성 없이. 그런 점에서 잡지는 잡다하고 빼곡하게 사회를 모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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