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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Nov 30. 2023

산책자의 하루

산책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취미다. 독서랑 음악감상은 정말 애호하는 취미인데도 너무 무난해서 말하기가 쑥스럽다. (주에 3권은 읽고 월에 스트리밍 횟수가 천번 가까이 되는데도) 귀걸이 모으기는 너무 의외라고 해서 친해진 사람들에게만 말하고 싶달까. 하지만 산책은 아주 흔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눈에 띄지 않아서 좋다. 그림자가 길어지기 전, 햇살이 이지러지기 전, 오후 세시 이전 쯤에는 밖으로 나온다. 우울증에는 햇빛이 좋다는 속설을 믿으면서.     

 

이사하기 전에는 집 앞에 산책로가 있었다. 한켠에 꽃과 나무가 심겨지고 평평해서 걷기 좋은. 이사하고 나서는 그렇게 걷기 좋은 길이 없다. 뒤편에 가파른 산길, 앞에는 도로 옆 조그만 보도. 그 보도마저도 경사가 졌다. 그래도 되는대로 걸어본다.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어깨를 피한다. 신호가 걸려서 잘게 걸음이 막히기도 한다. 서울은 걷기가 좋은 도시는 아니지. 저 수많은 차들이 계속 달리네. 해서 걷기만 하는데도 도시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 같다. 행진하는 것처럼. 좀 더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계속 내려간다.      


거리의 건물들. 거리의 사람들. 

내가 자주 걷는 곳과 같은, 오래된 동네를 간다면 길에 들어선 건물들과 사람들이 적절한 무게와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대학로 같은 오래된 번화가를 다니면 붉은 벽돌로 된 건축물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무게와 양감과 세월을 숨기지 않는다. 글자는 원색이지만 낡아버린 간판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 지나온 시간을 숨기지 않는 그런 느낌을 생활감이라고 해보자. 거리의 사람들도 그렇다. 오래된 동네에는 또 오래된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들이 회사 건물로 들어가 일을 할 때면 또 모르지만, 우선 거리에서의 그들은 별로 숨기는 게 없는 무표정이다. 그들의 무던한 얼굴과 주름이 좋다. 누군가는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의 표정을 놓고 무표정한 것이 무섭다고, 외국인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말이다. 잘 웃지 않는 곳이 어디 한 두 곳이어야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주어야 한다는 압력에 애써 짓는 미소에서는 뭘 느끼기도 민망하다. 다정함과 친절함도 기력이 있어서 내킬 때야 의미가 있으니까. 건조하게 상황을 대하는 무표정은 일종의 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 중 하나는 어느 도서관 가는 길인데, 시장 근처여서 그런지 주말이 되면 도서관 가는 길목까지 장이 선다.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얼굴도 그렇게 무심하다. 물건에 눈길을 줘도 저자세로 호객하지 않는다. 하루의 쓸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굳이 구겨지지는 않을 거라는 다짐. 오랜 시간을 거쳐서 농축되었을 그것을 마음의 힘이라고 표현해도 별로 시원하진 않다. 사물을 들어올리는 근력, 그럴 때 생기는 힘줄과 근육의 움직임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일상과 맞닿았다. 보정되지 않은 생활감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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