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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Dec 09. 2023

안티 로맨스

인스타그램     

괜히 맛집 추천 게시물을 눌렀다. 그저 돈 자랑 인증샷이나 보고 싶었는데 둘러보기에 너덜너덜한 짤방들이 추천된다. 화질이 구린 사진에 천박한 제목이 박힌, 그런 것들. 글은 그저 토핑 수준인 이미지 중심의 SNS에서 왜 그렇게 꾸역꾸역 혐오발언을 눌러 담는 건지. 망조 들었나. 인스타에 ‘인스타 감성’이 없어진다. 신비로운 필터 속에서 찍은 사진만 덜렁 올리는 게 미덕인, 유행과 허세의 과잉이. 그건 김치찌개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김치찌개 집 같은 것이다.      

인스타를 구성하는 양 축, 자랑의 인증샷과 혐오의 짤방은 각각 선망과 차별이라는 욕망을 반영한다. 선망은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과시해서 높은 평가를 얻는 것이라면 차별은 타자를 깎아내려서 얻게 되는 죄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일 테다. 이들을 ‘구별짓기’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꽤 상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선망이 가정하는 어려운 가치들에는(마치 낙수효과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일종의 도덕적 성취가 포함될 수 있고, 그 도덕적 성취에서 다수가 공평하게 자행하는 차별은 ‘너무 쉬운 길’이라서 치명적인 오점이 되기 때문이다. 해서 자신의 멋짐을 자랑하면서 차별주의자일 수는 없다.      

그러니 자랑과 혐오가 뭉쳐있는 인스타는 ‘혼돈의 카오스’이자 ‘어둠의 다크니스’일 밖에. 스크롤을 내리면서 혐오와 자랑을 번갈아 구경할 때, 쉽게 차별하면서도 차별주의자로서 지적되거나 동정받는 것은 거부하면서, 동경 섞인 사랑을 원하는 인간들의 구역질 나는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볼 것이니 괴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지어다. 동경만을 허락하는 사랑은 이 시대의 발명품. 유서 깊은 종교든 사상이든, 예로부터 사랑은 타자에 대한 연민이었고 상대의 매력과 가치와는 무관한 무차별적 자비의 결과였다. 현대의 사랑만이 연민을 거부하고 미화를 요구한다. 손에 피가 묻지 않은 자가 없는데도.   

   

사이비 인류학     

만약에 원시 인류나 아마존의 부족 집단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인간을 연구한다면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는 쓸만한 자료일지도 모른다. 연구하기 위해서 거리를 두고 현상을 본다면 그것의 시궁창 같음에 절망하기보다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될지도. 쉽게 감정에 휩싸이기보다 현상의 의미와 가치를 곰곰이 따져본다는 점에서 소격과 탐구는 생각의 좋은 태도처럼 보인다. 사이비로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현재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 있다면 수많은 사이비 인류학자들일 것이다. 가치판단을 유보한답시고 자기 책무를 쏙 빼놓는다. 이 사람들은 청년들을 밀레니얼이니 MZ니 하는 생소한 명칭으로 구분해놓은 다음, 이름을 붙였기에 그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기라도 하는 양 군다. 그래서 사이비 인류학자들은 청년들의 감정적 동기에 집중하는 내재적 접근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내재적 접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내재적 접근은 청년 일부의 잘못, 예를 들어 극우화, 차별 담론, 반동 정치가 반성되어야 하는 실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결과라고 정당화한다. 그래서 일부 청년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에 대해 지적하면 청년들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오히려 청년 세대 전체에 퍼진 울분과 서러움을 들먹이면서 그들을 단순한 희생자로 일반화하며, 희생자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한다. 청년의 현상은 청년의 시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동정을 넘어서 시혜적인 시선 아닌가. 마치 사람을 물어도 개의 품성이나 격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 이 많은 사이비 인류학들은 무엇을 위한 건가. 설마 차별과 반동을 미화하고 조장하기 위해서? 쓴소리를 이유로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아이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계속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는 사회에서 몇 안되게 책임을 추궁당하는 사람들은 아이돌이다. 유행에 가까운 차별 발언과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이돌에게서 발견되면 사람들은 자기 안의 더러움을 거울로 들여다본 양, 질겁을 하면서 비판한다. 그 비판이 조금이라도 더 공평하면 좋을텐데, 싶지만 덕택에 아이돌들은 팬들이 사랑할만한 사람들이 된다.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역겨운 본심을 제어하고 예의를 차려야 하는 사람들. 덕분에 연애 인구는 줄어들어도 팬덤 인구는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 연애감정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라도 하는 양. 그래서 안티 로맨스를 부르는 아이돌은 그 모든 무례한 연애담과 인간관계의 파국을 대신해서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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