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으로 말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사회에 여러 사건 사고가 넘치는 요즘, 좀 한가한 소식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3주 정도 남았다. 예년에 비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몇 주 전 모 신인 영화감독이 SNS에 쓴 비판글을 봤기 때문이다. 영화제 심사위원이 제대로 영화를 보고 있느냐는 문제 제기부터 특정한 주제를 선호하는 편향성에 대한 비판까지는 꽤 그럴듯하게 보였던 것 같은데, 뜬금없이 비슷한 류의 페미니즘 영화만 천편일률적으로 접수된다는 주장에선 약간의 ‘쎄함’을 느꼈다. 게다가 이번 해외 메이저 영화제에서는 일본 영화가 한국 영화보다 더 많은 출품작을 냈다는 말은 좀 생소했다. 세상에 영화 강국이 한둘이 아닌데, 아직까지도 영화 산업이 애매한 일본을 굳이 예시로 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이 논거는 단지 독자의 호오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감독의 다른 게시물도 보았다. 일본 영화의 ‘성녀 판타지’를 두고서 예전에는 유치하게 생각했지만 다시 보니 등장인물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PC주의’로 갈등이 격화된 한국 사회에 성녀 판타지적 요소가 치유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 하고 댓글 창을 여니 상당수 여성들이 감독에 대한 욕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치유와 구원을 구하고 있지. 게다가 이 글에서 분석의 대상이 되는 일본 여성은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치유자인 것인가. (그게 성애적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입맛이 뚝 떨어졌다.
불행하게도 이런 류의 주장은 발에 채일 듯이 많다. (친일파, 지일파, ‘일빠’ 따위로 불리는) 우리 사회 안의 일본 애호가들이 한둘이 아닌 탓이다. 물론 미국 애호가, 프랑스 애호가, 독일 애호가가 있는 마당에 일본 애호가가 없으란 법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 애호가가 그렇듯이 자신이 애호하는 나라를 오류 없는 낙원으로 숭배하는 꼴은 눈뜨고 봐주기 어렵다.
관용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에 인종차별이 되려 횡횡하듯이, 독일이 비유럽 국가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는 미온적이듯이, 일본도 과거 제국주의 시절 만행에 한 번도 진지하게 사과하거나 피해자에게 배상한 적이 없는 데다, 여성과 외국인을 차별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일본 애호가들은 일본 사회의 문제나 비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일본을 ‘환상의 나라’로서 소비한다. 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나 심하게는 포르노의 이미지를 가지고 일본 사회를 재단한다.
그에 따라 일본은 부유하며 갈등이 없는 사회,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는 사회, 여성들이 순종적인 사회 등으로 다분히 선정적으로 요약된다. 아니면 료칸이나 진보초 서점과 같은 관광지가 표상하는 힐링 스팟의 이미지로 재현된다. 선정적인 요약의 이미지든 힐링 스팟의 이미지든, 실제 일본 사회의 갈등과 문제, 타자들에 대해 일본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본 애호가들의 일본 애호는 딱히 일본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오버투어리즘’을 방지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확신을 준다) 오히려 일본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심드렁해 하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를 더 다양하게 본다. 적어도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본 사회를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보지만 일본 애호가들은 일본을 일반의 사람들이 아닌, 자기들의 환상이 거주하는 장소로 생각하기에. 어쨌든 일본 애호가들은 자신들의 환상을 투영한 일본을 창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일본화’가 되기를 바란다. ‘유러피안 드림’이나 ‘제3의 길’ 같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길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일본화’가 되어야 하니, 그들은 당연히 한국도 ‘일본화’가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한국보다 더 앞서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처럼) 앞서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분야도 ‘일본화’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사회 문제가 일본의 사회 문제로 대체되기를 바란다. ‘자기들 머릿속에만 있는’ 순종적인 일본 여성, ‘한국처럼 대규모로 분출되지 않기에 자기들 눈에는 안 보이는’ 일본 시민 사회의 요구들로. 일본 내의 사회적 약자, 타자들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게다가 세상의 모든 나라가 ‘일본화’가 되길 바라는 그들의 바람은 이미 그들 머릿속에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 세계의 나라는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미국 정도밖에 없다. (러시아 정도도 없는 것 같다.) 북한과 중국은 적이며 그렇기에 한국, 미국, 일본은 공조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절대적인 우방이기에 과거면 모를까 현재는 한국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중국은 한국에 백 퍼센트 해악만 끼치는 존재라고 여긴다. (한국에서 일본 애호가들 다수는 혐중주의자니까.) 이들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라는 사실조차도 잘 모른다. 그리고 대일무역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것도. 일본이 일으킨 한일 무역 분쟁보다 중국의 ‘한한령’이 한국 경제에는 더 큰 타격이 되었다는 것도. 그러니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과거사 문제 회피는 덮어두고 돈독한 한일관계를 만들자는 힘 빠지는 소리를 하겠지. 하지만 정부 인사가 중국 관료를 만나는 거에는 화를 낼 거고.
일본 애호가들의 지겨운 주장과 가여운 지성은 이렇듯 일본에도 한국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들을 외면하기에 윤리적이지도 않다. (물론 일본의 좋은 점은 좋아하고 나쁜 점은 싫어하는 일본 애호가들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이 어떤 한 국가를 애호하며 ‘덕질’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 애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보고 한일관계에 훈풍이 불 거라며 박수를 치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공조든, 관세 협상 방어든 어떤 명분도 이런 식의 한일관계 개선이야말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도 일본을 이야기하면 분노하는 피해자들이 있다.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을 이야기하면 죄의식에 시달리는 몇몇의 일본 사람들도 있다. 당신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살게 하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