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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zi May 21. 2018

나의 하루를 너에게 줄 수 있다면

미얀마에 사는 신혼부부, 시바견 호두와의 소소한 일상

 강아지 세계의 시간은 인간 세계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사람이 보내는 한 시간이 강아지에게는 일곱 시간. 나에게는 하루지만 호두에게는 무려 일주일.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리는 시곗바늘을 따라 호두는 빠른 속도로 적응해나갔다. 봄날 갓 눈을 뜬 새싹처럼 생기 가득한 호두의 모습에서 환하게 빛이 났다. 아장아장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집 안 곳곳에 햇살을 불러들이는 듯 생명력이 넘치니 하얀 페인트 벽 따위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장아장, 카메라 속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 호두. 너무나 작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귀여운 유치가 보인다.
껌을 주었다. 너무 어려 씹지 못한다.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어느 정도 적응을 했으니 이제 예방접종을 하러 가볼까?"

호두는 제 몸만 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아무 말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호두야, 주사 맞는 거야, 주사.'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혹시 너무 아파서 까무러치면 어쩌나, 설레발을 친다.

'나도 아직 주사가 무서운데, 너는 더 무섭겠지?'

'앞으로 병원을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미 머릿속에서는 호두가 주사를 맞고 있다.

'너무 아파 진찰대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해?'

'꼬옥 안고 주사를 맞춰야겠다.'

내가 공연한 잡념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호두는 혼자 놀기의 달견(?)이 되었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

 미얀마에는 모기가 많아 심장 사상충으로 죽는 개들이 많다.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열두 달 심장 사상충 약을 투여해야 한다. 약이 독해서 간에 무리가 가므로 40일에서 45일 간격으로 투여하는 견주들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여유를 둘 수가 없다. 간 챙기려다 심장을 잃는 낭패를 보면 큰일이니.

 예방접종 역시 매우 중요한데 길에 떠돌이 개들이 많아 산책시 배설물 등을 통한 접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도 약 다섯 마리 정도의 개가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단지 내를 배회하다 경비 아저씨들이 챙겨주는 밥을 먹으며 짧은 생을 유지한다.    

 해가 무자비하게 열기를 뿜어대는 정오가 되면 단지 내 좁은 그늘 밑에 숨어 잠을 잔다. 한낮, 미얀마의 기온은 30도 중후반까지 치솟는다. 개는 사람보다 기초체온이 높기에, 어쩌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달궈진 땅을 딛다가 발바닥에 화상을 입는 일, 신선한 물을 마시고 싶을 때마다 마실 수 없는 일. 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겪어야만 하는 숙명 아닌 숙명이 참으로 가혹하다.

단지 내 산책로. 단지 내 개들은, 조경관리사가 물을 뿌리는 날 잔디 사이에 고인 물로 마른 목을 축인다.
미얀마의 한 거리. 백구 한 마리가 문 닫힌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다.
아직 개발 전인 아파트 뒷편. 해가 저물어가자 활동을 시작하는 누렁이.

 드디어 첫 예방접종을 하는 날.

아침부터 긴장한 나와는 달리 호두는 평온했다.

사료도 야무지게 먹고 제일 아끼는 터그놀이 장난감과 한바탕 몸싸움도 벌였다.

그.러.나.

호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듯 있는 힘을 다해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미안하지만, 다 너를 위해서야. 엄마를 원망하지 말아라.'

나는 호두를 놓칠세라 품에 꼭 껴안고 병원 문을 열었다.

병원에는 노란 바구니 안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 노견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머리가 하얗게 샌 주인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미얀마의 동물병원들은 대개 시설이 열악하다.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은 찾아볼 수 없으며 수술이 이루어지는 곳은 극히 드물다. 보통 한국에서는 접종을 모두 완료한 뒤에 항체 검사를 실시하지만 이곳에서는 항체 검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원할 경우 자료를 태국으로 보내야만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만큼이나 미얀마에서 '반려견'이라는 표현은 아직까지 낯설고 생소한 것이다.

 노견을 바라보는 주인의, 그 담담한 얼굴 뒤에 가려진 슬픔을 본다. 태어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어린 강아지와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노견. 너희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주어진 시간을 반려견에게 떼어줄 수 있다면 그 앞에서 망설일 견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2년 전 반려견을 떠나보내던 날의 날카로운 기억이 심장을 쿡쿡 찔러대는 것 같아 얼른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얼른 주사 맞고 가자, 호두야.'


 나는 호두를 안고 괜스레 진료실 근처를 서성댔다. 접수 후 이름을 부르면 진료를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눈에 띄는 대로 불러다 진료를 한다. 다른 강아지를 진료 중인 수의사 선생님께 '나 여기 있어요, 잊으면 안 돼요!'라고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니 바로 다음 차례에 들어오라는 사인을 받았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코끝을 찌르는 알코올 향 때문인지 호두가 더 강하게 버둥대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로 첫 접종이라 이야기하고 진료대 위에 올려놓으면 도망갈 것이 분명하니 안고 주사를 맞게 하겠다는 뜻을 온몸으로 피력했다. 의사선생님은 호두의 컨디션을 몇 가지 체크하더니 주사기에 약물을 채워 넣었다.

'얼마나 아플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호두야, 금방 끝나, 조금만 참ㅇ"까지 얘기했는데 순식간에 목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히며 접종 끝.

호두는 '낑!'하고 울부짖을 타이밍을 놓친 듯했다. 놀란 토끼 눈으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충격이 컸는지 호두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품에 안겨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1차 예방접종 완료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접종 후, 세상을 다 잃은 듯이 앉아있는 호두
그래도 맘마는 야무지게 먹어요

 이렇게 무사히(?) 1차 예방접종을 끝낸 호두. 그러나 호두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두 번이나 더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미얀마에서는 예방접종을 3차까지만 진행한다.

 힘내, 호두야.







 안녕하세요, 호두엄마입니다.

미얀마에 살며 의미 있는 취미를 만들어보고자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이었는데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되어 조회 수가 10만이 넘는 기적을 맛 보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글을 읽어주시고 행복을 빌어주셔서 이 감사한 마음을 어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두는 현재 생후 6개월이 조금 넘었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D

한때는 마치 '난 지옥에서 온 강아지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팔다리에 달려들어 물어뜯고(입질), '내 털을 먹어라!!' 있는 힘껏 털을 뿜어댔으나 지금은 이갈이까지 모두 잘 끝내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어요~

앞으로의 이야기에 입질, 털갈이, 이갈이 에피소드 등을 풀어보려 합니다. 언젠가 과거 이야기가 끝나고 현재 이야기를 따라잡는 날이 오길 바라며 무럭무럭 자란 호두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큰 관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엄마 간다!!" 아무리 외쳐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호두는 산책을 좋아해요!
많이 컸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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