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사는 신혼부부, 시바견 호두와의 소소한 일상
성장속도가 LTE!
강아지의 성장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엊그제 호두를 데려온 것만 같은데 어느 순간 아기에서 개린이(개+어린이)가 되었다. 누워있던 두 귀도 바짝 서고, 느슨했던 꼬리도 돌돌 말리기 시작했다. 처음 데려왔을때의 아기 같은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아빠, 나 기숙사까지 차로 데려다주면 안돼?>_<" 하며 애교를 부리던 내가 직장이 생기고 혼자 운전해 출퇴근을 시작했을때가 문득 스쳐지나간다. 어느날부터 나를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어딘가 쓸쓸해보였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호두의 빠른 성장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서운하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다가 어느 순간 "엄마, 나 독립할래!"라고 말할 것만 같다. 눈만 뜨면 놀아달라고 보채던 호두가 성견이 되어 집에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니 흘러가는 1분 1초가 너무 소중하다.
호두야, 조금만 천천히 자라면 안될까?
침대멍이 되다
시바견은 타견종에 비해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이 아이들은 먹는 곳, 배변하는 곳, 잠자는 곳을 각각 구분지어 놓는다. 한번 볼일을 본 패드 위에는 공간이 남아도 다시 볼일을 보지 않는 편이며, 야외산책을 시작하면 'only 실외배변'으로 바뀌는 시바견이 대다수인지라 견주들은 보통 하루 1~2회의 긴 산책 외에 2~3회의 짧은 배변산책을 따로 해야한다. 실외배변을 고집하는 아이를 실내에서 배변하도록 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밖에 나갈 때까지 끙끙 참다가 질병을 얻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정보 없이 시바견을 입양했다가 산책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파양하는 견주들이 많아 안타깝다. 어떤 이유에서든 파양은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견주들은 잊지 말아야한다.
집에 온 첫날부터 배변을 가리던 호두도 여기저기 깔아둔 배변패드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곳의 패드 위에서만 배변을 해결했다. 주로 사람의 시선이 쉽게 닿지 않는 구석지고 어두운 곳이었다. 용케도 침대 위에서는 한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 매너있는 침대멍이 된 것이다. 침대멍은 밤마다 어슬렁거리며 편한 잠자리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제일 편한 자리는!
베개와 베개 사이!
발 밑에서 자다가도 새벽에 눈 떠보면 꼭 베개 사이에서 자는 호두. 좁은 틈에서 자야 안정감을 느끼나 보다.
자다가 무심결에 눈을 떴는데 '메롱'하고 자고 있는 호두.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보다가 잠든 기억이 난다.
어느날 갑자기 베개를 베고 자기 시작한 호두. 강아지들도 어딘가에 머리를 베고 자는 것이 편한가 보다. 호두 전용 베개를 하나 만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10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
한두시간에 한번씩 깨서 울고 보채던 아기들이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고 나면 몇시간씩 통잠을 자게 된다는 기적. 퇴근 없는 육아에 시달리는 엄마들에게 꿀같은 휴식을 가져다준다는 '100일의 기적'. 그것이 내게도 일어났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끼잉!끼잉~끼잉!". 그렇게 두세시간에 한번씩 나를 깨우던 호두가 이젠 얌전히 통잠을 잔다. 침대 위에서 함께 자는 것이 이 어린 강아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나보다. 그리고 필수적으로 즐기는 낮잠. 덕분에 나도 함께 낮잠을 자거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생애 첫 간식
무럭무럭 자란 호두는 3차 예방접종까지 무사히 마쳤다. 1차 예방접종 후, 수술이 가능하고 비교적 위생적인 동물병원을 알게 되어 병원을 옮겼고, 열이 나는 등의 이상반응 전혀 없이 접종을 완료했다. 미얀마의 동물병원들이 항체검사를 진행하지 않는 탓에 나는 마음 속으로 항체가 잘 만들어졌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애타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손을 물어대는 호두에게 나는 영양식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항체 잘 만들라는 의미로 만들어주는거야, 항체 안만들어졌으면 도로 뱉어내야해!"
호두는 아직 어려 시중에서 판매하는 간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때문에 '간식'이라는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너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겠노라'. 나는 호기롭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호두 생애 첫 간식의 이름은 '고구마치즈볼'. 락토프리 우유를 '큰' 냄비에 넣고 데우다가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이고, 식초를 한두스푼 넣은 후 저어준다. 이 때, 하얗게 응고되는 덩어리들이 바로 '무염치즈'다. 살짝 소금 간을 하면 사람이 먹는 '리코타 치즈'가 된다. 몽글몽글한 치즈를 채에 걸러 유청(응고 되지 않은 액체)과 분리한 뒤, 찐 고구마와 소량의 꿀을 넣고 섞어 동그랗게 만들면 완성!
무염치즈는 만들기도 쉽고, 영양식으로도 좋아 사료 위에 토핑으로 올려주기도 한다. 인터넷에 '강아지 무염치즈'로 검색하면 사진과 함께 자세한 방법을 소개한 글들이 많이 올라와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주의할 점★
1. 일반 우유는 강아지가 소화시키지 못하므로 락토프리 우유 사용하기
2. 우유가 확 끓어넘치기 때문에 참사를 막고 싶다면 반드시 '큰' 냄비 사용하기
3. 강아지가 식초 냄새에 민감할 경우, '레몬즙' 사용하기
3. 응고 되는 치즈의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작은 팩우유는 비추천
TIP. 사료를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은 유청을 식혀서 사료에 부어주면 잘 먹는다.
고소한 우유 냄새가 좋은지 만드는 내내 주방을 맴돌던 호두. 시식 후기는 글보다는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게 더 낫겠죠?
이실직고_석고대죄
안녕하세요, 호두엄마입니다!
제가 얼마 전 미얀마에서 SD 카드를 하나 구매해 호두 사진을 카드로 모두 옮겼는데..
네... 정품이 아니라 그런건지, 카드가 갑자기 인식이 되질 않아 호두 사진이 모두 증발해버렸어요..
큰일났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호두의 아가아가한 모습들이 다 날아가다니ㅠㅠ!!!
분노와 슬픔을 오가던 중, 우연히 들어간 눼이붜 클라우드에 사진이 고스란히 백업되어있음을 발견하고 기쁨에 차 바로 소식 전합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한없이 죄송합니다 ㅠㅠ 앞으로 부지런히 글 올릴게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호두 보너스컷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