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2
혼자 하는 숨바꼭질.
대차게 뛰쳐나올 때와는 다르게 4학년 짜리 여자아이가 집을 나와서 후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누군가가 와서 달래고 어르고 못 이긴 척 따라 들어가는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울며 나가는 딸이 안타까워 엄마나 아빠가 뒤쫓아 오는 드라마 같은 상상은 사치였다. 하다못해 두 언니 중 한 명도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한 삼 분을 혼자 씩씩거리다가 잠깐 후회가 스치려는 찰나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는 것에 다시 화가 났다. 코뿔소 같은 콧김을 뿜으며 절대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4학년 여자아이가 집을 나오면 갈 때는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어도 외우는 번호가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십 원짜리 동전 하나 들고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요일 오전 늦잠을 자다 일어난 옷 그대로였다.
‘옷이라도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아님 방에 있던 돼지 저금통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몰래 들어가서 뭐 좀 들고 올까?’
호기롭게 뛰쳐나올 때와는 다르게 불안과 걱정만 잔뜩 밀려왔다.
‘이렇게 혼자 가다가 나쁜 사람한테 잡혀가면 어쩌지?’
‘집 나온 아이 티가 많이 나나?’
‘돈도 없는데 어디서 자고 배고프면 어쩌지?’
‘밥이라도 다 먹고 나올 걸 그랬나?’
먹다 만 밥 생각을 하니 금세 배가 고파왔고, 집 나온 지 10분 만에 오늘은 내가 좀 심했다는 반성에 이르렀다. 그래도 냉큼 집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이렇게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의 억울한 심정이 엄마 아빠에게 미약하게나마 전달이 되려면 적어도 30분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했다.
집 주위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맴돌다가 혹시나 나를 찾으러 다니는 가족들과 마주칠까 봐 벽에 딱 붙어서 살금살금 동태를 살폈다. 이런 내 모습이 꼭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찾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술래가 없는 숨바꼭질은 지루했고 시간 때우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만큼이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차라리 이모 집으로 갈까 생각도 했었다.
작은 이모 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놀러 왔다고 하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금방 관뒀다. 거기도 여동생이 오빠 때문에 어지간히 속앓이 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둘이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오빠와 남동생 흉보기였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틀림없이 이모네로 갈 거라 생각하고 미리 연락해 두었을 것이다. 그 덫에 절대 걸리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굴리며 생각이란 걸 좀 하니 나올 때의 화도 좀 잦아들고 배고픈 것도 좀 나아지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가서 친구랑 놀면 되겠다는 기발함이 머리를 스치자 갑자기 힘이 생겼다. 뛰어가면 금방인 곳에 내 단짝 친구가 있다는 걸 이제야 떠올린 내 머리를 신명 나게 한 대 톡 쥐어박았다. 폴짝폴짝 하늘을 날듯이 높이 뛰어올라 땅에 닿는 두 발을 번갈아 굴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가출이 그리 쉬웠으면 나는 아마도 습관적으로 가출을 했을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서 도착한 친구 집 앞에서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었다. 동네가 떠나가라 친구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친구 이름을 부르던 내 입술이 점점 오그라들었다. 이제야 생각이 나버렸다. 친구네 집은 기독교이고 일요일마다 가족들과 교회에 간다는 사실을.
절을 다니는 엄마는 교회 가는 걸 싫어했지만, 여름성경학교에 가면 이것저것 간식을 많이 줘서 엄마 몰래 몇 번 따라갔던 기억이 멍청하게도 지금에서야 떠올랐다.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날 처음부터 아들로 보내 주었을 것이다.
갑자기 다시 배가 고파오고 의욕이 사라지고 반복되듯 밀려오던 후회가 다시 찾아와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너무 신나게 달려 바닥이 나버린 체력으로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자!!'
정신을 차리고 따라 나왔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면서 내 이름을 목이 터지게 외치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들어가면 다시는 혼 안 낼 테니 집은 나가지 말라고 나를 끌어안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면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