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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2. 2023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1

내 찾지 마라

우리 네 남매는 모두 집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가 손수 다 받으셨다.  우리 집안의 아들이 태어날 때 난 4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희석된 기억 속에 엄마가 동생을 낳던 관경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1981년 양력으로 정확하게 3월 1일.

태극기 휘날리는 삼일절에 태어난 녀석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나라 해방은 물론 세계도 통일시킬 것만 같은 위대한 인물을 보는 듯했다.

아들 못 낳는 꼬리표를 뗀 엄마는 시아버지 앞에서 늘 움츠렸던 어깨는 힘이 들어갔고, 죄인처럼 숙이던 고개도 빳빳이 들 수 있었다. 그런 아들이 엄마에게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동생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상전이었다.


그런 상전 동생덕에 나의 예상치 못한 처음이자 미지막 가출 사건도 발생하고 말았다.


우리 집안의 서열은 늘 아빠 다음엔 동생이었다. 나이 터울이 있는 언니들은 몰라도 난 동생을 더 귀하게 여기고 대접받을 때마다 미움과 질투가 더 커졌다. 같은 사고를 쳐도 나만 혼나고 놀다가 동생의 잘못으로 싸워도 괴롭혔다고 나만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럴수록 내 분노는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그날도 변함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섯 식구가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늘 동생과 아빠 앞에는 고기반찬이나 내가 좋아하는 햄이나 계란 생선 같은 값비싸고 좋은 반찬들이 놓였다. 맛있는 반찬을 동생보다 많이 먹는 것이 말도 안 되는 나만의 복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늘 먹는 속도가 빨랐고 많이 먹었다. 동생이 내 앞을 지나 반찬을 집으러 가면 먼저 팔을 뻗어 가로채고 혼자 승리감에 취해 미소를 짓곤 했다. 근데 그날은 내가 생각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방해했다. 결국 엄마가 동생 밥그릇에 발라놓은 고등어까지 얌체같이 뺏어 먹었다.


“이씨~ 와 자꾸 내가 무글라카는거만 가 가는데?”

참다못한 동생이 밥을 먹다 말고 소리쳤고, 모두의 눈이 나에게로 날아와 꽂혔다. 큰언니와 작은 언니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밥을 먹었고, 엄마는 또 나만 혼내기 시작했다.

“니 아까부텀 야가 무글라카는그만 뺏끄라 가는 거 모릴 줄 아나?”

“머? 내도 무글라 했다. 이기 내 무글라는 거 따라 한기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엄마에게 소리쳤다.

“이기 오데서 고함질이고.”

“와 만날 내만가꼬 머라카는데? 이 새끼는 와 머라 안 하노!”

실수를 감지한 순간 이미 늦어버렸다. 별말 없이 식사하던 아빠가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움찔한 내가 뭐라고 변명할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아빠의 숟가락이 내 머리를 힘차게 내려쳤다.

“이노무 가스나가 오데 밥 묵다 말고 엄마한테 고함질이고, 그라고 동생한테 새끼가 뭐꼬.”


숟가락에 맞았던 머리는 아프고, 아빠까지 혼을 내니 서럽고 억울했다.

“내 고추 달고 나와도 낸테 이리 하끼가! 만날 천 날 와 내만 머라카는데!”

난 들고 있던 숟가락을 상위로 집어던져 버렸다.

“내 찾지 마라 내는 인자 이집 아 안 하끼다.”

화가 난 마음이 앞서 충동적으로 냅다 일어나 방문이 부서지게 닫고 대문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조심히 닫아도 삐걱거리는 철문을 거칠게 밀치며 뛰쳐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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