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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2. 2023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3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처음 대차게 나올 때랑은 다르게 조용히 들어갔다. 그러나 내 머릿속의 상상과는 다른 풍경이 나를 맞았다.


울고 있는 엄마도 나를 찾으러 간 사람도 없었다. 늦은 아침으로 먹은 그릇을 씻고 있던 엄마는 들어서던 나를 쓱 보고는 다시 설거지에 집중했다. 아빠마저도 어디 놀러 나갔다 들어온 애처럼 슬쩍 보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그 모습에 다시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보란 듯이 구들장이 내려앉을 것처럼 쿵쿵 소리 내며 엄마 아빠 주위를 서성거렸다.

일요일이면 독서실을 가는 큰언니가 가방을 메고 나오다가 나랑 마주치자 ‘왔냐?’하고 한마디 던지더니,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텔레비전을 보는 동생이랑 작은언니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록 채 한 시간도 안 되지만 가출이란 걸 하고 돌아왔는데 가족들은 그냥 놀러 갔다 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각자의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북받치는 설움에 금세 두 눈 가득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으아앙~~~~~~”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대성통곡도 그런 대성통곡이 없었다.

“내가 집을 나갔는데 와 아무도 안 차자 댕기노? 갱찰에 신고 해야제, 동네방네 구석구석 찾아 댕기야제! 와 암 일도 읍는거맹키로 이라고 잇시모 우짜노?”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에 엄마는 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배 골으모 겨들어 오것지! 만다꼬 수고 시릅고로 찾아 댕기노?”

“내가 고마 나갔나? 머리통 맞고, 밥 묵다 말고 띠 나갔다 아이가!”

“그랑께 밥 묵다 말고 기나갓신게 고푸모 들오것지!”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다. 악을 쓰며 우는 순간도 어찌나 배가 고픈지 다른 날보다 목소리가 좀 작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거짓말처럼 눈물이 뚝하고 멈췄다. 그러나 이대로 나의 가출이 별것 아닌 게 되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억지스러움은 악어눈물이 되어 소리만 질러댔다.


그때, 동생이 시끄러워서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린다며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동생의 행동에 화가 나 벌떡 일어나 동생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에 난 더는 동생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글아네도 둘만 나앗시모 했다이, 만날천날 싸와삿다가 한 놈 나가모 내는 좋다! 나가고 싶으모 나가라 안 잡는다! 나가등가, 고마하고 퍼득 여 와서 밥 묵등가!”

정말 우리 엄마는 한다면 하는 엄마였다. 괜히 겁주려는 말이 아니다. 엄마 말을 어겨 손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꾀죄죄한 얼굴로 내 몫으로 남겨놓은 밥상에 앉아 조용히 마저 밥을 먹었다.


그렇게 나의 무모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은 초라하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 후로도 난 여전히 동생과 싸워 혼이 나면 주워 온 딸일지 모른다는 좌절감에 빠져도 절대 집은 나가지 않았다. 나갔다 온다고 한들 덜 혼내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시대의 명언을 따라 아들 딸 구분 없이 둘만 낳고 잘 살자는 국가의 큰 뜻을 따르지 못하고, 시아버지의 구박에 못 이겨 둘을 더 낳았기에 누구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정말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집 나가면 고생이고 억울함에 배만 더 고프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이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동생을 괴롭히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내가 괴롭히지 않아도 세상 ‘세’에 거느릴 ‘제’를 쓰는 내 동생 ‘세제’는 이름 속의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이 빨래 빨 때는 ‘세제’가 좋다며 어찌나 놀려대는지 집에만 오면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썼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지어준 아들 이름을 바꿔줄 맘이 없었다. 동생은 급기야 이름 안 바꿔 주면 집을 나간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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