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삭제 Jun 24. 2023

이용한 생일.

내가 좋아하는 홍합을 잔뜩 넣은 미역국이 끓고 있다. 다른 쪽에선 생선 한 마리가 서럽고 억울한지 슬픈 눈으로 기름 눈물을 흘리며 튀겨지고 있다. 분주한 아침에 나물은 그냥 안 하기로 혼자 결정해 버렸다.

 

2019년 8월 22일 오늘은 엄마 생일이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팔월의 막바지. 아파트와 달리, 주택의 독립된 주방은 덥다. 이마에 맺힌 땀이 음식에 떨어질세라 얼른 닦는다. 엄마도 주방에서 이리 땀을 흘리며 지난 10일 내 생일 미역국을 끓였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나다가도 이내 속상해진다.



 

우리 가족은 겨울인 아빠 생일에는 모여서 식사를 하지만, 여름인 엄마 생일에는 다 같이 시간을 맞춰 간단한 휴가를 즐겼다. 겨우 1박 2일의 짧은 날이지만, 각자 떨어져 사는 네 남매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었다. 올해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엄마의 생일이라 허전할 엄마를 생각하며 네 남매가 우여곡절 끝에 3일의 시간을 맞추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이면 8월 10일 내 생일날이었다. 늘 양력으로 치는 내 생일과 7월 22일인 엄마의 음력 날짜가 올해에는 불과 12일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10일이란 날짜가 엄마의 생일을 기념하기엔 너무 일렀지만, 서로의 시간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여행지로 떠나는 날이 내 생일날이라 엄마는 하다못해 미역국이라도 끓일 것이 분명했다.


손이 큰 엄마가 적당히 할리는 만무하고, 분명 여행지인 부여로 싸들고 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서울 손주들에게도 먹일 수 있게 바리바리 해 댈 것을 확신한 나는 며칠 전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다. 예약된 숙소는 음식을 해 먹을 수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여러 번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더운 여름날 삼일이나 집을 비우니, 될 수 있으면 해 놓은 음식도 전날까지 다 먹고 가자했다.

 

그러나 엄마 마음이란, 모든 게 귀찮은 딸과는 달랐다.

 

떠나는 생일날 아침, 당연하다는 듯 미역국은 끓고 있었다. 어느새 맛깔스럽게 무친 나물에, 생선은 찜통에서 제 빛깔을 내며 먹음직스럽게 쪄지고 있었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8월, 아침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주방이 거실과 분리된 우리 집은 문을 닫아 놓고 음식을 하면 그야말로 찜질방 못지않았다.


에어컨을 틀어 주방문을 열고 음식을 하라고 해도, 불 앞이라 에어컨도 소용없다며 전기세만 더 나온다고 문을 꼭꼭 닫고 음식을 하셨다. 그 모습에 속이 상해 여러 번 화를 내고, 어차피 둘이서 많이 먹지 않으니 조금만 하라고 달래 보아도, 엄마는 이십여 년을 따로 살다 온 딸에게 늘 이것저것 매일 새로운 것을 먹이려 아침마다 땀을 흘리셨다.

 

삼복더위에 아이를 낳느라 고생을 한 엄마가, 해가 갈수록 더해가는 날씨에 힘들게 낳은 자식의 생일 밥까지 챙기느라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순간 화가 났다.

 

“하지 말라고! 금방 출발하는데 뭐 하러 그리 땀을 흘리면서 주방에서 그러고 있어? 내가 며칠 전부터 말했잖아 안 해도 된다고 제발 하지 말라고!”

“생일날 멱국도  안 무그?”

“남은 미역냉국 한 사발 들이키면 되지 뭐 하러 또 음식을 하냐고!”

  

안 해도 된다는 음식을 하면서 고생하는 엄마에게 화를 냈지만, 그건 나 자신에게 쏟아내는 분노였다.


더운 날씨에 칼날 같은 말은 가슴속에 박히는 불씨가 되어 서로를 태웠다.

나쁜 딸 낳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날, 지워지지 않는 화상을 남기고야 말았다. 그렇게 여행지로 떠나는 차속에 공기는 에어컨 냉기보다 차가웠다.

 



엄마의 생일이 있는 주는 혼자 너무 바빴다. 차 사고를 수습해야 했던 월요일과, 방학 동안 집에 와 있던 조카를 서울로 데려다줘야 했던 화요일, 간 김에 하루를 묵으며 이것저것 볼일을 보고 부랴부랴 다시 돌아와 집에 들를 시간도 없이 모임에 참석한 수요일 저녁.

그리고 엄마 생일 목요일.

오전부터 학원을 가야 하는 날이기에, 내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침에 끊일 미역국에 넣을 홍합을 사놓을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 생물인 홍합을 미리 사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당신이 먹을 미역국에 들어갈 홍합을 사달라는 미안한 부탁까지 했다.


엄마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주고자 하는 착한 딸의 효심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맘이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딸의 본심이었다.

 

홀로 되신 엄마와 지내기 위해 20년을 넘게 생활하던 큰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온 내가 남들 눈에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겠지만, 타향살이에 지칠 대로 지쳐 아늑하고 안전한 엄마 품으로 돌아 온건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혹을 넘긴 딸을 다시 키우게 하고 있다. 효심이라 보기 좋게 포장하여 딸을 희생하게 만든 심봉사처럼, 모정이라는 떨칠 수 없는 마음을 끝까지 악용하는 나쁜 딸은, 찌는 생선을 더 좋아하는 엄마의 식성을 무시하고 내가 좋아하는 기름에 생선을 튀겨내고 있다.

 

지금 나는 내 마음 편하자고 엄마의 생일을 이용하고 있다.


뽀얗던 국물이 뜨거운 불에 펄펄 끓어 짙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뜨겁고 치열했던 엄마의 삶인 것만 같다.


나와 같은 사십 대에는 자식들을 지키며 생을 이어가기 위해 그렇게도 고단하더니, 이제 조금 편해진 69번째의 생일엔 지켜냈던 그 자식을 다시 품는다.

 

늘 표현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미역국물 속으로 밀어 넣고 함께 끓이며, 한숨을 내뱉는 얼굴로 흘러내리는 감정들을 닦는다.

 

올케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음식에 담아 출근하는 동생 편에 보내왔다. 내 손에서 부족함으로 차려진 초라한 엄마의 생일상이 고마운 올케 덕에 감춰진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미역국은 내가 끓인 거 알지?”

 

보기 좋고 맛있게 만든 올케의 음식들 사이에서 혹여나 내가 만든 미역국이 천대를 받을까, 일부러 큰 그릇에 담아 엄마 앞으로 밀며 괜히 어깨에 힘을 준다.

 

“아이고 맛 난다. 간이 맞다.”

 

미역국을 한 숟갈 떠먹는 엄마가 눈가에 주름을 그리며 말한다. 엄마 따라 미역국을 떠먹으며 국물 속에서 함께 우러난 ‘엄마 그동안 미안했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는 말도 같이 삼켜 버린다.


그리고 내 눈가에도 어느새 엄마를 닮은 주름이 생겨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