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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n 26. 2023

배웅.

외할머니의 마지막길.

1988년 9월. 어느 날.

 

엄마의 심부름을 위해 혼자 버스에 올랐다.

비포장도로 길 위를 먼지 날리며 달리는 버스 안 대부분의 승객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색색의 보따리를 하나씩 차고앉아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또래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안내양 언니가 있던 시절,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버스는 나의 외가가 있는 어느 시골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양 언니의 목소리를 놓칠세라 잔뜩 긴장한 내 얼굴은 얼어있었다.

집중한다고 했는데 결국, 목적지를 지나치고 말았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낯설기 그지없고,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마음도 불안해졌다. 결국 버스는 종점에 섰고, 버스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내릴 곳을 지나쳐버린 내게로 다가오는 안내양 언니의 그 발걸음이 왠지 무서웠다. 생각과는 다르게 상냥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였지만, 이미 마음은 모든 불안과 공포로 뒤덮여 혼내는 말투로 들렸다.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달래는 안내양 언니의 음성은 자꾸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어떤 위로에도 멍청하게 내릴 곳도 지나쳐버린 바보 같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을 더 큰 울음소리로 감춰 버렸다.

 

엄마를 찾으며 숨넘어가는 울음에 섞인 말들을 용케 알아들은 안내양 언니는, 나를 자신의 뒷자리에 앉히고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


‘오라이~’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조금 위안을 받아보지만, 이상하게 여전히 울음은 그칠지 않았다. 그렇게 왔던 길을 다시 달린 버스의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안심이 된 마음은 눈물을 삼켰다. 친절한 안내양 언니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다행히 목적지에 내렸다.


이렇게 먼 곳까지 혼자 심부름을 보낸 엄마에게 화가 났지만. 난 지금 엄마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울며 찾았던 엄마는, 오늘 엄마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슬픈 엄마에게 나의 잘못으로 인한 일을 원망할 수 없었다.

 

점점 눈에 익은 길을 따라 나는 외갓집으로 향했다.

들어서면서부터 무섭게 휘날리는 이상한 물체들에 다시 겁을 먹은 나의 눈에선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입은 이상한 옷도, 머리에 두른 이상한 머리띠도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울음이 터진 어린 나를 어른들은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 마디씩 했다.

 

“쟈가 지 할매 가뿟다고 울어삿네.”

“할매 저승길에 마이 울어라 더 질러야 할매가 안 서분타.”

“지 할매 빼다 박아서 억치 서븐는갑다.”


어른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울면 혼을 내던 다른 때와 다르게 더 울라는 말에 힘을 입었는지, 아님 정말 외할머니의 죽음이 슬펐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울음소리는 대성통곡으로 변했다.

 

그런 나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엄마는 외할머니의 사진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사진 속의 외할머니는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나를 보며 웃어주던 외할머니였는데,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늘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우린 네 남매는 한 동안 외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가게 근처 작은 방을 하나 구해, 그곳에서 할머니와 네 남매가 지냈다. 어린 나는 외할머니의 품이 좋았지만, 어딜 가도 늙고 못생긴 외할머니를 닮았다는 말들을 해서 무척이나 싫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외탁이었다.

 

외할머니가 엄마 손에 이끌러 거추장스러운 쪽진 머리를 자르고, 뽀글거리는 파마를 하고 나서부터 외할머니와 난 틀에서 찍어낸 똑같은 붕어빵 같았다. 

외할머니는 연신 좋아했지만, 나는 여전히 싫었다.

어린 마음에도 예쁘고 싶었는데 못생긴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니, 내 얼굴이 더 못생겨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외할머니에겐 그것이 이유였는지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다른 어른들은 아들인 동생을 더 좋아했는데, 외할머니는 자신을 똑 닮은 내가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런 외할머니의 말에 은근히 좋은 기분은 표현하지 않으면서, 닮았다는 어른들의 말에는 괜한 상처를 받아, 외할머니에게 신경질도 가끔 내곤 했었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언제나 웃어주었다.

 

손주들을 돌보며 휘어버린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던 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허리를 주물러주었던 기억. 맛있는 것이 있으며 언제나 내게 먼저 주었던 기억. 엄마에게 혼이 나서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던 기억.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통하지 않는 엄마를 건너뛰고 외할머니를 졸랐던 기억.

 

그런 기억의 조각들이 외할머니의 사진 앞에 앉자, 머릿속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 끝엔 작은 눈이 더 작아진 외할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의 모습이 낯설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그 미소를 보지 못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좀처럼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렇게 난 울다가 지쳐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예전에 엄마에게 혼이 나서 울다 지쳐 외할머니의 품에서 잠이 든 것처럼. 그런 나를 사진 속 외할머니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 나의 복잡한 눈물의 이유를 단정 지을 수 없다.


죽음을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고, 혼자 떠난 길에서 잠시 길을 잃었고, 낯선 초상집의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다. 대견하다는 듯 건네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난 그날 어느 한 어르신의 말처럼, 외할머니가 가는 길에 서운하지 않을 정도의 눈물을 쏟아내며, 눈물 속에 기억을 담아 외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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