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파마머리와 곱슬머리를 구분하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방법은 분무기다.
선도부 완장을 찬 선배가 한 손에 분무기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 위로 사정없이 분무기를 갈겨댔다.
“쌤, 야 꼽쓸머리 맞십미더.”
물을 먹은 머리가 꼬불꼬불 살아나면 파마를 한 것이고, 비 맞은 생쥐처럼 축 늘어지면 곱슬머리이다.
난, 마치 소나기 맞은 생쥐가 되어 버렸다.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는 내 몰골이 참 웃겼다. 간간이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마! 첨부텀 꼽실이라카믄되지 울긴 만다 울고 글카노!!”
당황한 선생님이 입술 끝에 웃음을 감추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물에, 콧물에, 분무기로 뿌려 댄 물에, 엉망진창인 가관인 얼굴로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그러면서 눈은 자동으로 찢어졌다.
“묻도안코 머끄댕이부터 잡아 땡기잖아예.”
또박또박 침착하지만, 꾹꾹 눌러대는 것은 화(火)였고, 운동장 가득 울러 퍼지는 것은 나의 분노였다.
“이 짜슥 지금 승 내는기가?”
나는 분명 겁 많고 소심한 아이였다.
머리 한번 잡혔다고, 가슴 밑바닥에 꾹꾹 담겨 있던 본능이 터져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래 그런 아이였던가.
변명하자면, 자를 때가 지나서 자꾸만 휘는 부분을 잡느라 아침부터 고생해서 만든 앞머리였다.
핑계를 대자면, 정말 우악스러운 곰 같은 손에 잡힌 머리카락이 다 뽑힐 정도로 아팠다.
버르장머리 없는 싹수에 이유를 붙이자면, 아이들 앞에서 굳이 머리를 잡아챘어야 했는가.
그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성질머리를 깨운 것일까.
삽시간에 나의 곱슬머리 사건은 소문이 났고,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학생주임 선생님 상대로 눈까지 곱게 치켜뜨고 바락바락 대든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난 요주의 인물이 되어 학생주임 선생님의 시선 안에 머물렀다.
친구들에겐 파마하지 않아도 볼륨감 있는 나의 앞머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곱슬머리는 여전히 내게 콤플렉스였다. 그렇게 시절의 유행에 따라 ‘스트레이트파마’로 앞머리를 펴는 신세계를 맛보았지만, 이번엔 진짜 파마했다는 이유로 교무실 복도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뽀글이 빠마도 아인데 와 벌 세우는데예?”
“피는건 빠가 아이가?”
“아~ 진짜!!! 온제는 꼬불거린다고 뭐라카고, 인자는 피고왔다고 멀카고, 와 나만가꼬 그라는데예!”
나는 쭉 뻗은 앞머리만큼 입술을 댓 발 내밀고 툴툴거렸다.
“니는 앞머리가 안 뽀글거리몬 걸리는거 모리나?”
"그람 다시 뽂아오까예?"
어이가 없는 선생님이 내 머리를 콕 쥐어박았다.
“아야, 아픕미더!”
나는 더 이상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아니었다. 중2병에 걸린 성질머리 더러운 사춘기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