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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탐 Oct 26. 2024

안녕, 나의 퀘렌시아

너에게 나의 삶을 필요이상으로 투영했던 나는 정말 나였을까

어쩌다 최애의 연애를 알았다.

우습지만 무슨 남친의 바람을 알아낸 사람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의 연애에 무너지는 내가 너무 구차하고 미련하며 어리석어 보였다.

최애를 사랑한 기간 동안, 최애의 다양한 모습들을 알게 된 나는 누구보다 빨리 최애의 연애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게 그를 정말 사랑했다는 방증이라면 방증이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를 스스로 열게 만든 재앙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 3일은 거의 물속에서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최애의 연애는 사실 엄청 그 친구의 커리어와 연애가 직결되는 듯한 느낌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연애는 사실 그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어쩌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젊은 혈기의 그가 연애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충분히 응원할 만한 일이며 나는 그의 행복을 누구보다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연애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음에 절망을 느꼈다.

그런 내 사랑의 그릇됨에 스스로가 창피했지만 마음의 불안이 최애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사라지지 않아 몇날이 힘들었던 거 같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최애의 연애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란 걸 안다. 그는 오랫동안 비밀연애를 할 거라 말했고, 정말 내가 우연한 경로로 연애 흔적을 퍼즐조각처럼 맞추어 완성한 것뿐이기에 이 비밀을 꼭 지켜주고 싶었다. 내 주변에 있는 그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내 머글 친구들에게는 그 상황에 대해 말하며 욕을 하긴 했지만. 이정도는 사랑한 만큼의 길티 플레져라고 합리화했다 하하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 불안과 절망을 해소하고 다시 잘 나아가고 싶어서

그날 나는 최애와의 종말을 위해 최애의 사랑에 대한 유서를 쓰러 홀로 독립서점에 갔다.


그리고 그에게, 어쩌면 나에게 편지를 썼어


편지 전문


안녕, 몰랐는데 너는 나의 퀘렌시아였나봐

너는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너와 이별 하려해. 사실 내가 스스로 키워온 사랑인데 왜 이리 이별이 힘든건지 스스로 자문했는데, 나는 내가 못미더웠던 것 같아.

그래서 너를 통해 나를 키웠어.

너를 사랑하며 어쩌면 네가, 혹은 너에 버금가는 존재가 내 옆에 있을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의 초라함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지.

그런 상상없이는 이겨낼 수 없을 만큼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는 걸

오늘에서야 덕분에 깨달은 거 같아.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사랑하는 법으로 덕질을 골랐으나

나를 사랑하지 못해 덕질을 해왔구나.





너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음 그 이유는 나에게 짐이라는게 진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

내 사랑은 사실 가짜인건가?

너에 대한 사랑만은, 내가 가진 모든게 가짜여도 진짜 일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친구가 내가 우니까 와서 그러더라고

* 나와 네가 정말 비슷하지만

내가 강하지 못한 부분에 너가

치열하게 이겨낸 부분에 내가 감동해서

너의 힘듦을 내가 채워주고 싶어한대



너무 맞는 말이라

아 나는 너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었구나 생각했어

그래서

너라는 창으로

이미 죽어있던 나는 너에 의존하여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됐어



스스로에게 물었어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나는

너라는 창으로 겨우 삶이 붙어있었는데

너가 없으면 죽었을거야

너라는 창을 빼면 나는 죽은 목숨이야 근데 너가 없으면 죽는, 이미 죽은 나는


사실 살아있는게 맞을까?

그래서 사실 나는 너덕에 산게 아니라 그냥 숨이 붙어있던 거구나

라는 답에 이르렀어 그래서 그냥 내 작별인사처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덕질을 하였으나

나를 사랑할 수 없어 덕질을 했다는걸

아이러니하게 알게되었네


그치만 나는 연애 감정 이외에도 너를 분명 아끼고 사랑해 왔기 때문에

이런 지저분한 불순물이 위로 떠오른 뒤 다시 걷어내고

그럼에도 너를 사랑할 힘이 있다면

다시 산뜻하게, 너를 사랑하러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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