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알람이 울렸지만, 아이는 미동도 없이 꿈나라를 여행 중이다.
우리 세 식구 중 유일하게 제시간에 눈을 뜨는 딸 니나가, 며칠 감기로 지쳤는지 영 눈을 뜨질 못한다.
나는 또 고민한다.
아이의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생활 습관, 부모의 바쁜 일상 중 어떤 것들에 우선 순위를 두고 행동해야 할지.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디쯤 애매한 지점을 선택한다. 애매하게 깨워서, 애매하게 다그치고 애매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우리 세 사람의 아침 일정은 다 늦고 마는 슬픈 선택이었다.
9월~10월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우리 집은 힘들고 버거웠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이 감기나 유행성 질환을 ‘달고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악몽 같은 환절기였다.
아이는 추석을 전후로 감기, 수족구와 같은 질환을 한달 내내 달고 살았고, 9월 한달간 등원은 3일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아픈 아이와 전쟁을 치르며 나도 몸이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지럼증에 이비인후과와 내과를 오가며 검사를 받았다.
이석증이라는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귀 안의 돌이 굴러 떨어져서 눈앞이 핑핑도는 어지럼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어이없기도 했다.
어지럼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이어 장염까지 겹치며 몇 주 동안 계속 아팠다.
조금 괜찮아지자 나는 또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하지만 몸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운동하고 나면 되려 어지럽고, 힘이 없고, 몸의 각 부위 관절과 뼈, 장기들이 제각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다.
몸이 힘들어도 일상은 그대로다. 할 일은 산재되어 있고 아이는 늘 내 손길을 기다리고 하고 싶은 일도 천지다.
결국 한의원을 찾았고,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생각을 놓는 시간이 없네요. 진정으로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겁니다.”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몸이 쉬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머리로는 하루 24시간 내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들어도 뇌는 깨어 있고, 쉬는 시간에도 다음 할 일을 계산하고, 몸이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의 몸은 아주 영특하게도 중요한 곳에 먼저 에너지를 보내고, 이외의 곳에 남은 에너지를 보낸다. 가장 중요한 기관인 ‘뇌’에 에너지를 먼저 보내고, 남은 에너지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곳으로 차례로 배달한다.
소화기관이나 평형을 담당하는 귀의 세포는 '남는' 에너지가 가야 하는 곳이다. 나는 그 ‘남는 에너지’마저 거의 만들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왜 이렇게 쉽게 고장 났는지를.
그동안 나는 ‘진짜 휴식’이 아닌 ‘가짜 휴식’만 하고 있었다.
누워 있어도 생각은 계속 달렸고, 운동을 하면서도 ‘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렸다. 몸은 멈추길 원하는데, 마음은 더 빨리 달리라고 등을 떠밀었다.
내 몸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늘 아이를 먼저 챙기고, 할 일을 먼저 챙기고, 나 자신은 마지막으로 밀어 두었던 나였다. 사실 상 24시간을 풀로 가동 중인 낡은 기계였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멈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머릿속 소음을 줄이는 것이 진정한 쉼이라는 것을.
남은 수십 년을 지혜롭게 살아내기 위해 이제는 진짜 휴식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기꺼이 ‘내려 놓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Let it go.